사회 속 지저분하고 해로운 이미지 강해, 1990년 '뒷골목 정치' 용어 등장하기도
◆골'목'틈'새
'골목'은 어디서 나온 말일까. 단어를 구성하는 '골'과 '목'의 유래는 무엇일까. 골도 한자어가 아니고 목도 한자어가 아닌데다 골목을 가리키는 한자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서 도통 그 어원을 찾을 수 없다. 다만 골목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이라고 나온다. 좁다. 그리고 골목은 대개 기다랗다.
비슷한 단어가 있다. 산속 여러 갈래로 난 물길, 그러니까 물들의 골목길이라고 할 수 있는 '골짜기'는 사전에 '산과 산 사이에 움푹 패어 들어간 곳'이라고 적혀 있다. 움푹 패어 들어갔으니 좁다. 그리고 골짜기 역시 대부분 기다랗다.
골짜기는 물이 흐르는 통로를 형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谷(골 곡)이라는 한자어로 표현된다. 그리고 골짜기는 영어로 valley(밸리)다. 어라, 골목은 영어로 alley(앨리)다. 움푹 팬 골짜기에 비해 골목은 모양새가 완만하다. 그러니 뾰족한 모양의 알파벳 V를 뺀 단어가 골목을 가리키게 된 것은 아닐지.
한글, 한문, 영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본다면 피식 웃을 만한 엉뚱한 생각이다. 말의 근원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정설이 없어 해보는 엉뚱한 생각이다.
골목 같은 단어가 또 있다. '틈새'다. 골목길에 무수히 있는 '틈'(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과 '새'(사이, 한곳에서 다른 곳까지의 거리나 공간) 역시 어원을 찾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골과 목과 틈과 새는 서로 다르지만 결국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근거는 대구의 뒷골목에 있다.
◆현대 뒷골목 수난사
수많은 골목이 모여 있는 골목 집합소 대구 동성로에는 인파로 북적이는 큰 골목도 많지만 너무 좁아 골목이라기보다는 틈과 새로 불러야 할만한, 그래서 다른 명물 골목과 달리 이름도 붙지 않은 골목도 여럿 있다. 대부분 뒷골목이다.
뒷골목은 우리 사회에서 꾸준히 어둡고 지저분하고 해로운 공간을 가리켰다. 1969년 2월 한 신문 기사의 표현에 따르면 뒷골목은 '포장이 안 돼 시민들이 문밖을 나서면 마른 땅을 골라 딛느라 곡예사처럼 춤을 춰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흙길 위주인 뒷골목 포장을 성토하는 기사가 당시 신문에 자주 게재됐다. 뒷골목은 범죄의 온상으로도 지목됐다. 그래서 1972년 11월 한 신문 기사는 그해 치안국(경찰청의 전신, 내무부에 소속돼 있었다)은 전국 주요 도시 뒷골목을 대상으로 범죄 예방을 위한 보안등 10만 개 달기 운동을 벌였고, 그 영향으로 뒷골목 강력범죄가 전년 대비 53% 줄었다고 보도했다.
뒷골목은 비유적 표현으로도 널리 쓰였다. 1992년 2월 한 신문 기사는 배우들이 과감한 신체 노출을 하는 연극이 성행하는 분위기를 비판하며 '뒷골목 연극'이라고, 이 연극을 올리는 서울 대학로 골목의 극장들을 '뒷골목 극장'이라고 지칭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신문 정치 기사를 두루 살펴보면 '뒷골목 정치'라는 용어가 참 많이 등장한다. 정치인들이 상대를 비판 내지는 비난할 때 빈번하게 입으로 뱉었다. '새 정치'의 반대말로도 쓰였고, 신문 분석 기사 속에는 '뒷골목형'이라는 정치인 분류 항목도 있었다. 정말로 실상이 그랬던 것 같다. 2002년 8월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 정치인들의 부패와 당쟁이 경제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한국의 정치는 뒷골목의 깡패들이 벌이는 난투(backstreet scuffle between gangsters)에 가깝다'고 했을 정도다.
이런 표현을 요즘은 찾기 힘들다. 정치를 비롯해 우리 사회 수준이 퍽 높아졌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뒷골목의 이미지를 대체하는 명사가 등장해서일지도. 대표적인 단어가 '막장'이다. 광부들의 일터를 가리키는 막장도 그저 좀 더 깊숙한 곳에 있을 뿐인 뒷골목처럼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불명예를 겪고 있다.
◆뒷골목은 번화가의 힘
동성로 배후에는 지름길로 쓸 수 있는 구부정한 경로의 뒷골목이 제법 있다. 숨은 뒷골목길을 찾아 잘만 활용하면 동성로를 축지법 쓰듯이 다닐 수 있다. 가로 길과 세로 길에 둘러싸인 건물 밀집지(블록)를 관통하는 대각선 길이 곳곳에 있고, 꼭 그렇게 나 있지 않더라도 뒷골목길은 인적이 드물기 때문에 큰길의 혼잡한 인파를 피해 신속 및 쾌적하게 보행할 수 있는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뒷골목 풍경 소재는 그라피티 낙서와 담배 연기다. 사실 낙서는 재물손괴죄로 처벌받을 수 있고 흡연도 201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골목길 포함 공공장소가 금연거리로 지정되면서 과태료 징수 감이 됐다. 그러나 뒷골목에는 새로운 낙서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흡연자들도 흡연 공간이 부족하다며, 특히 휴게실이 마땅히 없는 주변 가게 직원들은 잠시의 여유를 누리기 위해 휴게 공간 삼아 뒷골목으로 모여든다. 뒷골목은 어떤 이들에게는 일상의 숨통을 터주는 틈새이기도 한 셈이다. 물론 낙서와 담배 연기는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기는 하다.
가게가 손님을 맞는 입구에는 두기 곤란한 각종 살림살이도 거의 뒷골목에 배치된다. 에어컨 실외기, 주방 덕트(환기구), 보일러 연통, LPG가스통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배후 뒷골목을 기능적으로 활용하지 않고는, 번화가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그런데 가게 뒷문으로 가득한 뒷골목에 가면 유독 구두 닦는 가게 입구와 옷 수선 가게 입구는 눈에 띈다.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아 뒷골목이라는 틈새에 들어서기 적합한 업종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구 뒷골목의 변신
최근 동성로의 뒷골목은 다양한 색깔의 가게들로 채워지고 있다. 고깃집 위주의 음식점들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늘어선 '2030골목'이 있다. 로데오 골목 깊숙한 곳에는 2030골목보다 좀 더 젊은 취향에 개성도 갖춘 음식점들이 모인 '삼덕사잇길'도 있다.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곳도 적잖다. 동성로 남쪽 통신골목의 경우 최근 휴대전화 판매점이 사라진 공간들 및 배후 뒷골목을 요릿집, 베이커리, 카페 등의 가게가 채우는 모양새다. 신피부과의원 뒤편과 2'28기념중앙공원 사이에 이어지는 주택가에도 식당과 술집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반경을 더 넓히면 동성로 동편 삼덕동과 서편 종로도 메인 골목에서 뒷골목으로 점점 상권이 번진 곳이다. 특히 종로에는 원조 명물 뒷골목이 두 곳 있다. 뒷골목으로 방치됐다가 대구근대골목의 명소로 올라선 '진골목', 그리고 뒷골목 깊숙이 위치한 대구의 마지막 요정 '가미' 한 곳의 존재만으로도 명물 골목의 지위를 차지한 '가미골목'이다. 동성로 인근 대구가 자랑하는 핫 플레이스 '김광석길'도 2010년 조성 이전에는 신천과 방천시장 사이에 방치된 뒷골목에 불과했다. 뒷골목을 빼놓고는 대구 골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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