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대선 불출마] 음해 정치·가짜 뉴스·현실의 벽 못 넘고

입력 2017-02-01 20:03:17

潘 "내가 너무 순수했다"…불출마 선언 3가지 결정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바른정당 당사를 방문, 유승민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바른정당 당사를 방문, 유승민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낙마(落馬)는 사실 예견된 것이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반 전 총장의 완주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는 등 한국 정치판을 피부로 느껴본 많은 정치인들이 그의 완주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끊임없이 가져왔다. 직업 외교관 생활을 통해 이른바 '반듯한' 생활만 해온 그가 스스로 길을 만들고 열어가야 하는 정치판, 특히 상대를 짓밟고 일어서야만 하는 사생결단식의 한국 정치문화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지난해 안동 하회마을 방문 때부터 강력한 대선후보로 부상한 반 전 총장은 지난달 12일 귀국,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를 내세우며 범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겨우 3주를 버티고 대선주자로서의 꿈을 접었다.

반 전 총장이 1일 불출마 선언에서 '불출마 결심 배경'으로 언급했듯이 그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정치권의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 뉴스' 등을 견디지 못했다. 반 전 총장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던 '박연차 23만달러 수수 의혹'이 대표적이다. 동생과 조카의 사기 혐의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고 무관하다며 강력 부인했지만, 이런 해명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퇴주잔 논란'은 반 전 총장을 괴롭힌 대표적인 '가짜 뉴스'였다 사례다. 선친 묘소에 성묘하는 동영상이 악의적으로 편집됐다는 것이다. 공항철도를 타면서 만원짜리 두 장을 넣었다는 논란도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오랜 세월을 외국에서 보낸 사람에게 들이대는 잣대로는 너무나 가혹했다고 그는 하소연했다.

그는 억울해했지만 이런 와중에서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최순실 사태 전까지만 해도 한때 독보적인 1위를 달렸지만, 귀국 1, 2주일이 지나면서 그의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고 최근엔 10%대에 머물렀다.

뚝뚝 떨어지는 그의 지지율을 보면서 당초 그에게 우호적이었던 각 정당들은 얼굴색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함께 가자"며 손잡기를 시도했던 야권 인사들은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 심지어 고향인 충청권 의원들조차 그의 배에 함께 타는 것을 망설였다. 지지율 하락→동조자 외면→세력 확장 실패→지지율 추가 하락이라는 악순환이 나타난 것이다.

그가 직접 나서 여야 유력 정치인들과 만나 합종연횡을 시도했지만, 이미 판세를 읽은 노회한 정치인들은 그를 외면했고 오히려 이용만 당하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반 전 총장은 1일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가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털어놨다. 기자회견 뒤 캠프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정치가 정말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순수하고 소박한 뜻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너무 순수했던 것 같다"고 실토했다.

반 전 총장 스스로 '준비 부족'도 그의 낙마를 현실화시킨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당 후보가 아닌 무소속 후보의 경우, 엄청난 선거 캠프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데 반 전 총장은 이런 현실적 문제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지역의 한 현역 국회의원은 "정치라는 것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밖에서는 돈 안 쓰는 깨끗한 선거를 외치지만 막상 이 판에 들어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인력, 조직이 돌아간다. 사무실 임차, 업무용 자동차 및 인력 동원 등 현실적 측면에서 그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겼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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