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경험 나누며 소통
멋진 어르신의 모범
신노년문화 만드는 공간
2014년 수성구 범안로 98(범안로)에 개관한 범물노인복지관(관장 우태양)은 사회복지법인 함께하는 마음재단이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수성구 어르신의 욕구와 특성을 반영하고 지속 가능한 서비스, 지역 밀착형 서비스로 주민 행복 공동체, 지역을 선도하는 노인복지관을 만들어가는 범물노인복지관은 현재(2017년 1월 1일) 기준 4천643명의 수성구 어르신이 이용하고 있다.
◆정신 건강 챙기는 오카리나 수업
고상한 음악 수업이지만 눈 돌아가기 바쁘고 손가락도 정신없이 움직인다. 오카리나에 숨을 불어넣던 얼굴은 금세 빨갛게 달아오르고 숨이 가빠 잠시 악기를 내려놓고 숨을 헐떡거리는 어르신 학생도 보인다.
오카리나는 19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발명된 비교적 젊은 악기다. 이탈리아어로 '작고 예쁜 거위'라는 뜻의 오카리나는 종류에 따라 4~13개의 구멍이 있고 온음계와 반음계를 모두 낼 수 있다.
오카리나반 박희진(78) 선생님은 오카리나는 손을 많이 움직이는 동시에 눈이 악보를 따라다니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 좋은 연습이라고 소개했다. 아름다운 오카리나 소리를 듣다 보면 정서적으로도 안정돼 노인들이 배우기엔 이만한 악기가 없다고 한다. 오카리나를 배우는 송점순(68) 씨는 휴대하기 쉽고 무겁지 않은 것이 오카리나의 최고 장점이라고 했다. 남편과 함께 동해안 해파랑길 770㎞를 종주한 송 씨는 "등산을 하면서 중간에 쉬어가거나 산 정상에서 연주하는 오카리나 소리는 피로를 잊게 한다"며 "어디서나 연주가 가능한 것이 오카리나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범물노인복지관에는 오카리나 입문 과정부터 중급, 연주 과정까지 수준에 맞춘 다양한 수업이 준비돼 있다.
◆말과 문화 배우는 중국어 수업
"통쉐먼 하오. 진톈 워먼 쉐시 쭝궈 꿔녠 원화."(안녕하세요. 오늘은 중국의 설날 풍습을 배워볼게요) 수개월 기본기를 다진 중급반 학생들은 중국어 질문에도 막힘없이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한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국어 수업은 어학 실력 배양보다는 중국 문화를 배우는 시간이 더 많다. 이날 수업에서 학생들은 중국에서 설을 보내는 전통 방식에 대해 배웠다. 대형 스크린에 한복과 중국 전통의상을 입은 선생님의 사진이 나타나자 학생들 사이에서 "와!" 하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중국인들이 다복(多福)을 기원하며 문에 걸어두는 지엔즈(종이를 오려 다양한 형상을 만드는 공예의 일종)를 만드는 시간도 가졌다. 두 번 접은 정사각형 종이를 잘라 한자 봄 춘(春) 자 만들기가 이날 수업의 과제였다. 능수능란하게 '春' 자를 만들어 내는 어르신이 있는가 하면 종이를 잘못 오려 얼굴을 찡그린 어르신도 보였다.
◆풍수지리부터 동양고전까지
범물노인복지관만의 특별한 수업을 꼽으면 바로 '음양오행과 가족생활'과 '동양고전의 지혜' 수업이다.
음양오행 수업에서는 생활 속에 적용 가능한 풍수지리적 자연의 이치를 배운다. 양동주(57) 선생님은 집 안의 가구배치부터 잠자리나 문을 여닫는 방향에 따라 사람이 받는 기운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음양오행의 기운으로 가족관계를 설명하는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내용이 수업에서 다뤄지면서 학생들 호응이 높은 편이다.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음양오행이 미신적이라는 말도 있지만, 조상의 지혜가 담긴 소중한 기록이라고 했다. 한 학생은 "일종의 플라세보(placebo) 효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구 배치를 바꾸면서 오래 앓던 두통이 사라져 매우 신기했다"고 했다. 실제 범물노인복지관에는 단순하지만 음양오행의 이론이 적용돼 있다.
동양고전의 지혜 수업은 범물노인복지관이 자랑하는 수준 높은 강좌다. 유가경(瑜伽經), 화엄경(華嚴經) 같은 종교서적부터 공자의 말씀이 담긴 논어까지 한자로 된 원서를 교과서로 사용한다. 책 속에 있는 말씀 한 구절로 학생들이 순서대로 경험을 나누고 뜻을 풀이해 본다고 한다. 이 수업을 듣는 한 어르신 학생은 "선생님이 쉽게 풀어 설명해 주기 때문에 딱딱하지 않고 어렵지도 않아 참 재미있다"고 했다.
이종학(73) 선생님은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는 노인들이 많은데 이 수업에서는 성인(聖人)들의 말씀을 되새기며 의미 있는 시간을 나누는 방법을 공유한다"며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젊은 시절을 잃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고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며 수업을 듣는 '어르신들은 모두가 선생님'이라고 했다.
우태양 범물노인복지관장은 "우리 복지관은 어르신이 되기를 준비하는 분들과 멋진 노년을 보내며 모범이 되는 어르신들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이라며 "더 많은 분들이 범물노인복지관에서 지혜와 경험을 나누며 신 노년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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