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은 보통 때보다 더 험난할 뻔했다. 대전에서 인천공항버스로 갈아탈 계획이었으나 버스가 매진되는 바람에 부랴부랴 서울 가는 버스에 올랐다. 서울에 내린 후에는 무거운 가방을 끌고 어깨에 멘 채 지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그 생각에 아찔해졌다. 더구나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할지도 몰라 서울행 버스 안에서 내내 불안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심공항을 이용하여 짐 없이 공항까지 갔지만, 버스 매진은 예상치 못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아들이 시험 2주 전부터 공부하겠다고 신나게 놀았는데 바로 그 2주 전 친구에게 불행한 사고가 일어났다. 아들은 큰 충격을 받고 슬퍼하느라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그것을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내 마음도 미어졌던 터다. 다만, 아들이 평소 복습도 소홀한 데다 시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안타까웠다. 형편없는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그러나 그 사고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사고가 발생한 시점은 그 누구도 예상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몇 권의 책을 번역했다. 저자들은 날 선 고민과 문제의식, 그것을 진지하게 파고 들어가는 역량과 뚝심, 놀라운 성찰과 깊은 지혜 등을 보여준다. 나는 그런 것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행운을 즐겼다. 덩달아 내가 근사한 사람이 된 듯 착각에 빠지기까지 했다. 번역을 하면서 나 나름의 기술을 터득했고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아 궁리하고 자료들을 추적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말에 대한 섬세한 고찰과 이해가 부족했고 글쓰기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내 직업 능력에 버젓이 상존하는 허점을 무시해왔던 것이다. 이런 식의 늦은 깨달음은 칼럼을 쓰면서 얻은 귀중한 피드백 덕분이다.
세상사 가운데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많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다고 얼버무리는 많은 것 중에는 부정적인 결과를 원치 않아서 슬쩍 눈감고 지나친 것들이 마침내 폭발한 것도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했거나 믿고 싶은 대로 믿은 탓도 있을 것이다.
게으른 데다 편의대로 재단하고 오만을 떨다가 만나게 되는 매서운 현실이다 싶다. 비행기 탄 날은 일요일이고 방학이니 버스가 매진될 것을 예상해야 했고 번역을 업으로 삼으면서 그 작업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그것을 보충할 공부를 해야 마땅했다. 이는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전술은 아니다.
사회로 시선을 돌려보자면 우리는 무엇에 눈감았기에 이처럼 참혹한 현실과 대면하나 싶다. 천리안이 없는 인간으로서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뜻밖의 일로 감동할 때도 있다. 그러나 미래를 더 참혹하게 만들지는 말아야겠기에 예상할 것은 예상하여 예방하고 조치하는 게 정치적으로 옳다. 예상해야만 하고 예상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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