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선이 만난 사람] 이시형 박사

입력 2017-01-27 04:55:02

"잘 씹고, 잘 걷기만 해도 행복해집니다"

이시형 박사.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이시형 박사.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이시형 박사와 황유선 씨
이시형 박사와 황유선 씨

바야흐로 '화병'의 시대다. 권세를 누리다 감옥에 갇힌 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화병이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권세에 나라를 맡겼다는 자괴감에 국민들은 더 큰 화병에 걸릴 지경이다. 언론 보도를 접할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혼잡한 도심을 걷는 사람들 얼굴에 웃음기가 가신 지 오래다. 우리들 모두는 그야말로 혼란의 시대를 통과하는 중이다.

행복 전문가, 이시형 박사를 만났다. 정신의학 분야의 권위자인 이 박사는 과거 '화병'을 세계 최초로 정신의학용어로 지정하는데 공헌했다. 그뿐 아니라 지금까지 수십 권의 책을 출간하며 국민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지금도 집필 작업을 쉬지 않고 있다.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정신적 무게감을 덜어낼 해법을 그가 제시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세로토닌 문화원에서 이 박사를 만나 과연 행복이 의학적으로도 향상 가능한지 들었다. 세로토닌은 인간 뇌의 시상하부 중추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일명 '행복 호르몬'으로 불린다.

-박사님은 뇌 과학자이자, 정신과의사이다. 무엇보다 '화병' 전문가이다. 현 시국을 보면서 화가 나는가.

▶지금은 초유의 상황이다. 부끄럽고 자괴감이 든다.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끼며, 정말 올바른 지도자가 귀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빨리 좋은 지도자가 나와서 수습을 해야 하는데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절망하는 것이다. 그러니 촛불도 들고 태극기도 흔든다. 그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여전히 주말마다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화나고 스트레스받은 사람들은 촛불집회나 태극기집회에 나가 각자의 구호를 외친다. 엉뚱한 질문일 수 있는데, 집회 참여가 정신적 고통을 덜어낼 수 있는가.

▶몇 번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우리 국민의 감정이 너무 직설적이다 보니 자칫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 혼란스러운 국내 정치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우리 편이 없고 경제 성장 역시 지지부진하다. 심하게 말하면 국제적 고아 신세다. 이제는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태극기를 든 사람이나 촛불을 든 사람이나 충분히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나. 분노를 삭이고 합리적인 절충을 해야 한다. 절충하면 욕을 먹고, 반대되는 얘기를 하면 비난을 받는데 이는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의 소녀상 문제를 두고 일본을 덮어놓고 반대하기보다 일본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반일이 아닌 극일이 될 수 있도록 한 차원 높은 성숙한 사고를 해야 할 때이다.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긍정적 정서는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단순히 이런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면 행복해지는 것인가.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이 사람마다 다르고, 행복의 기준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100평짜리 집이 있어야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비싼 고급 승용차를 몰아야 행복하다. 사람은 다 그런 욕심이 있는데, 욕심이 충족되면 '의욕 호르몬'이라 불리는 도파민이 분비되고 신이 나며 더 좋은 것을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충족될 수 없지 않은가. 만일, 다음 단계에서 더 이상 충족이 안 되면 즉각 불평한다. 계속 올라가려고만 하는 그것이 바로 도파민의 한계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도파민적 가치에 더 영향을 받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도파민적 가치 덕에 이만큼 발전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내려가는 훈련도 해야 한다. 물질적인 성장보다 정신적 성숙의 가치가 지금부터는 더 중요하다. 우리 선조들의 선비정신을 생각해보자. 부족해도 부족한 대로 만족하고 살아가는 자족정신이 있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은 바로 이러한 선비정신과 맥을 같이한다. 요즘 사람들이 왜 어둡냐하면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으니 그렇다. 물질적이고 외적인 성장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기가 더 못하면 불행하다고 느낀다. 선비정신을 얘기하는 이유가, 선비는 분수를 알기 때문이다. 인격적 소양이 있으면 자기 품위를 지키고 격조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으며 가난해도 행복한 것이다. 위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갈 줄도 알아야 한다.

-호르몬을 과학적 요소로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선비정신과 연관 지으니 낯설다.

▶세로토닌을 뇌 과학적 관점에서 보아도 결국 같다. 세로토닌 결핍 증후군 예를 들어보겠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발생하는 문제 중 제일 심각한 것이 우울증이다. 현재 이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제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자기 조절력이 약해지는 반면 중독 성향은 커진다. 뭐든지 좋은 것을 더 하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생기는데 그것을 끊을 수 있는 조절 능력이 없어진다. 그뿐 아니라 감정 조절이 잘 안 되고 절제를 못 한다. 공격성 역시 조절이 안 된다. 보복 운전이라든지 묻지 마 살인 등도 감정 조절과 감정 절제 실패로 인한 것이다. 이처럼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뇌가 극단으로 간다. 반대로, 너무 흥분하지도 않고 너무 가라앉지도 않으며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조절해주는 것이 바로 세로토닌이다. 이것이 자기 분수를 알고 인격적 소양을 쌓고 남을 배려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러니 세로토닌은 곧 선비정신과 통한다.

-우리 민족의 얼에 선비정신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은 다혈질적이라고도 한다. 기질적 특성에 따라 행복을 느끼는 정도가 다른가.

▶보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나는 우리가 기마 유목 민족의 후예라는 점에서 다른 민족과 다르다고 본다. 기마 유목민은 공격적이고 진취적이며 겁이 없다. 기질과 세로토닌 분비는 관계가 있다. 기질적으로 성격에 따라 세로토닌이 쉽게 결핍되는 타입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마음 수양이 더 필요하다.

-박사님은 대구 출생이다. 우리나라도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등 지역에 따라 기질이 다른데 이 역시 상관이 있는가. 대구사람들의 기질은 어떤가.

▶호남과 경북을 비교하면 경북에는 산이 많다. 산이 많은 곳은 계곡이 급하고 비가 오면 계곡이 넘친다. 대구 사람들은 성격이 굉장히 급하고 격하고 그렇지만 뒤끝은 없다. 예전에 내가 교수할 때도 학생들 시위할 때 앞장섰다가 잡혀가는 것은 대구 애들이었다. 대구 사람은 겁이 없고 흥분하면 확 일어나는 성격이다. 사람들은 싸움을 할 때 하더라도 그날 끝이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대구 사람들은 세로토닌 결핍이 더 잘 되는 타입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십수 년간 정치적 성향에서 대척점에 서 온 호남의 기질은 어떠한가.

▶전라도는 비옥한 평야지대이다. 사람들을 보면 예술적이고 여성적이다. 호남에 있는 강도 유장하고 사람들 기질이 그렇다. 평야도 넓고. 그러니까 경상도에 비하면 여유가 있는 유순한 성격이다.

-결국 세로토닌 분비가 원활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바탕이 더 잘 만들어진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 약으로 보충은 불가능한가.

▶세로토닌을 일시적으로 활성화하는 SSRI라는 약을 처방받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못 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하는 사회운동이다. 잘 씹고, 복식호흡하고, 잘 걷는 것을 생활화하는 것만으로도 약보다 훨씬 더 세로토닌을 자극할 수 있다. 우리가 심신이 약해져 사찰을 찾을 때도 비슷하다. 산에 오르는 동안 맑은 공기를 접하고 물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호흡을 깊이 하게 된다. 그때 세로토닌이 더 잘 분비되고 우리는 평정심과 행복감을 찾는다. 천년고찰들이 심산유곡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다.

-생각보다 간단해 놀랍다. 그리고 의학박사가 마음 습관을 강조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게다가 박사님은 병원 없는 사회를 지향하신다고 들었다. 비과학적인 것 아닌가.

▶아니다. 의학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응급의학인데 가령 혈관이 터졌을 때 수술을 하는 등 첨단의학 영역이다. 다른 하나는 만성질환 관련 분야인데 난치성 질환 혹은 불치병이라고 한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이 그렇다.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으나 다른 문제가 생기면 급성 환자가 된다. 자연 치유는 바로 그 만성질환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식사 조절이라든지 운동 조절, 일정한 생활 리듬 등 생활 습관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로토닌 분비가 왕성해지고 평정심을 찾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건강해질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마음 습관이 중요한데 그것 역시 세로토닌과 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의학 선진국들도 자연 치유를 중시하는가.

▶전 세계는 이미 자연의학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물론 첨단의학은 첨단의학대로 발전하고 있지만 자연의학은 자연의학대로 발전하는 추세다. 미국은 거의 주마다 자연의학을 의과대학에서 가르치며 독일은 더 보편화 되었다. 가급적 자연적으로 치료가 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정작 바쁜 현대인들은 세로토닌이 잘 분비될 수 있는 방식으로 살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된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그럴수록 지금 말한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 그것도 안 하겠다고 하면 방법이 없다. 안 해도 아무 문제없는 사람이 있다. 체질적으로 튼튼하거나 세로토닌 분비가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은 안 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행복해지기 위한 기본적인 수칙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자녀 양육인데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팁을 하나 달라.

▶과거에 우리는 이토록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때는 먹을 것만 있어도 행복했지만 지금 세상은 변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그들 삶의 온 희망을 걸고서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에만 신경을 집중한다. 그러나 행복은 아이들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올 수도 있고 오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발산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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