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먹는 '밥집'보다 잘 먹는 '집밥'이 최고

입력 2017-01-26 04: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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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는 삶이 담겨있다

집밥은 지문(指紋)과 같다. 집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솜씨는 물론 가족 입맛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또 맞벌이처럼 생활형태와 가족의 구성·연륜 등도 집밥 구성을 결정짓는 요소이다. 집밥은 한 가정의 사생활을 드러내기도 한다. 어떤 상차림을 하는지 남에게 보여주는 건 마치 추레한 모습을 들키는 것과 비슷하다. 한 가족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다. 이를 무릅쓰고 20곳이 넘는 남의 집 밥상을 들여다봤다. 상품이나 유행이 아닌 진짜 집밥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다. 밥상에 담긴 이야기는 저마다의 삶이었다. 일부를 소개한다.

◆사랑이 넘치는 신혼 밥상

#남편을 위해…하트 모양의 잡곡밥

30대 직장 여성인 김민지 씨는 아침마다 남편을 위해 상을 차린다. 2015년 11월 결혼한 김 씨의 밥상에는 남편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흑미와 현미가 섞인 잡곡밥을 틀에 넣어 하트 모양을 냈다. 햄과 호박, 당근 등을 다져 넣어 맛을 더했다. 주먹밥의 크기는 한입에 넣기 적당하고, 위에 깨를 뿌려 마무리했다. 국은 자극적이지 않게 무와 두부를 넣어 끓였다. 여기에 부모님이 주신 밑반찬을 더했다. 콩자반과 배추김치, 간장에 졸인 메추리알 등을 예쁜 그릇에 담았다. 부족한 녹색 채소는 삶은 브로콜리로 보충했다. 디저트로 준비한 사과와 방울토마토, 웃는 표정이 그려진 숟가락 등에서 사랑과 배려를 느낄 수 있다.

◆부모님 집에서 느끼는 맛

#엄마표 식단…고기에도 전에도 정성

강호웅(44) 씨는 한 달에 두세 차례 고향 청도를 찾는다. 고향집에는 아버지(72)와 어머니(63)가 계신다. 삼 형제 중 둘째 아들인 강 씨가 찾아오면 어머니는 나름의 특별반찬을 준비한다. 평소 상에 자주 올리지 않던 불고기. 버섯과 양파, 파 등 갖은 양념을 넣어 소고기를 구워낸다. 아들 가족에게 귀한 것을 먹이고자 하는 고향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다. 부추전도 눈에 띈다. 부추에다 밀가루를 잘 풀어서 구워낸 전이 입맛을 당긴다. 겉의 바싹함과 속의 부드러움이 있는 밀가루의 식감에다 부추의 풋풋한 맛이 더해졌다. 여기에 마른 새우를 넣은 무국은 흔히 볼 수 없는 '엄마표' 음식이다.

◆아이가 있는 가족의 집밥

#아이를 위해…불고기 양념도 안 맵게

장우석(41) 씨의 밥상에는 세 가족의 오붓함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두 살배기 아이를 배려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다. 젖먹이에서 이유식으로, 이제는 당당히 밥상의 일원이 된 아이를 위한 반찬 구성이다. 아이는 매운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배추김치를 제외하고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없다. 구운 김은 아이가 밥알을 흘리는 것을 막아준다. 그릇도 깨질 수 있는 재질을 피했다.

나머지 반찬도 아이 입에 맞췄다. 불고기도 간장 양념을 해 매운맛이 없도록 했다. 양파와 당근 등 채소를 충분히 익혀 무르게 했다. 국도 배추와 고기를 넣어 멀겋게 끓였다. 재료를 잘게 썰어 아이 입에 넣기 쉽도록 했다. 달걀 옷을 입힌 소시지 구이도 아이가 좋아한다.

◆맞벌이 부부의 남편 저녁상

#혼상의 여유…얼큰한 국에 맥주 한잔

김모(39) 씨는 맞벌이 부부다. 아내보다 먼저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혼자서 밥상을 차린다.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고, 굽거나 데울 음식이 있으면 간단하게 조리를 한다. 이날은 소고기가 눈에 띄었다. 프라이팬에 구운 채로 상위에 올렸다. 고기가 있으니 채소가 필요했다. 마침 배추가 있었다. 배추에 찍어 먹을 마늘과 땅콩이 들어간 쌈장도 꺼냈다. 콩잎 절임과 다시마도 고기와 맞을 것 같았다.

얼큰한 김칫국을 데우고 나니 시원한 맥주가 생각났다. 잡곡밥과 고기를 입에 넣고 국을 떠먹었다. 음식을 넘기고 나서 맥주를 마셨다. 톡 쏘는 느낌과 떫은 뒷맛이 입안과 목구멍을 깨우는 것 같았다. 쌈장에 찍은 배추를 베어 무니 아싹함과 옅은 단맛이 났다. 가끔 혼자 먹는 밥상에서 여유를 즐긴다. 이도 잠시, 배가 부르니 설거지가 걱정된다.

◆중년 부부의 풍족한 밥상

#가족을 위해…건강 챙긴 국·채소 듬뿍

김기일(58) 씨 가족의 밥상에는 연륜이 담겨 있다. 아들딸 등 네 가족이 둘러앉은 일요일 아침상에서 풍족함이 엿보였다. 다 함께 긴 시간 얼굴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주말의 여유로움도 있다. 잡곡밥에다 나물과 채소가 주를 이루는 건강한 밥상이다.

우선 잘 익은 배추김치와 총각김치가 상 가운데를 차지한다. 여기에 삶아서 간을 한 시금치와 더불어 취나물과 우산나물 등을 섞은 산나물 무침이 더해진다. 바싹함과 매콤한 맛을 더하는 튀긴 고추와 멸치볶음도 늦은 아침 입맛을 당긴다. 홍합을 우려낸 시원한 미역국이 더해져 밥이 술술 넘어간다. 구운 김과 참깨를 띄운 간장이 화룡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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