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 고래사냥 '암벽 인증샷'…『반구대암각화의 비밀』

입력 2017-01-21 04:55:02

반구대암각화의 비밀/문명대'이건청'이달희 편저/울산대출판부 펴냄

'525년 사부지(徙夫知)갈문왕은 연인 어사추녀랑(於史鄒女郞)과 천전리로 놀러 왔다. 그러나 그는 그녀와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조카인 지몰시혜비(只沒尸兮妃)와 결혼했고 진흥왕을 낳았다. 사부지갈문왕은 537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539년 지몰시혜비는 아들(진흥왕)의 손을 잡고 이곳에 와서 사부지를 위해 추모 제사를 올린다. 그러나 이곳은 사별한 남편의 젊은 시절 (다른 여자와의) 로맨스가 서린 곳이다.'

울주 천전리 암각화 좌우 명문에 새겨진 내용을 대략 정리한 것이다. 언뜻 보면 신라왕실의 시시콜콜한 잡문 같기도 하고 왕가의 의전(儀典) 기록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명문(銘文)은 신라 왕실의 내밀한 속살을 들여다보는 고대사 사료의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신라의 지방제도, 관등제, 왕실 혼인, 제사의식 등 1천500여 편의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반도 남부 고대사는 물론 신라사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그림으로 쓴 7천년 역사책-반구대암각화의 비밀'이 울산대출판부에서 발간되었다. 울산대는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암각화의 발견 46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12월 이 책을 출간했다.

1970년 12월 24일 동국대 교수팀에 의해 발견된 천전리 각석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1973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바로 근처에서 몇 년 뒤 발견된 울산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역시 우리 선사시대 최고 수준 원시 벽화를 넘어서 인류 문화유산으로까지 일컬어진다. 300여 점의 해양, 육지동물과 사람이 새겨져 있는 암각화는 구석기-신석기시대 생활상과 정신문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역사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

계곡과 맞닿은 높이 3m 폭 10m 암벽엔 동물과 인물, 도구 등 75종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 그림에는 제사장, 사냥 도구, 동물 등 다양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반구대암각화의 주인공은 단연 고래다. 작살 맞은 고래부터 새끼 밴 고래 등 고래 생태부터 고래 사냥에 나선 원시인 모습까지 그려져 있다.

이 책은 32명의 전문가와 인문사회학자가 참여한 반구대암각화 백과사전이다. 반구대암각화를 최초 발견한 문명대 동국대 교수와 '반구대암각화 앞에서'라는 시집으로 목월문학상을 받은 이건청 전 한국시인협회장, 이달희 반구대포럼 상임대표(울산대 교수)가 함께 엮어냈다.

1부는 역사학, 고고학, 미술사학, 지리학 등 18명의 전문가가 암각화와 관련한 비밀을 소개한다. 첫 발견자인 문명대 교수는 45년 전 '크리스마스 기적'을 안겨준 발견 당시의 스토리를 생생하게 전하고,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암각화에 새겨진 다양한 고래 그림을 분석했다.

주 교수는 "반구대에 각인된 고래는 귀신고래, 긴수염고래, 혹등고래라는 게 정설"이라며 "알래스카의 에스키모, 쿠릴열도의 아이누, 태평양 알류트(Aleut)의 고래잡이와 비교되는 해양 문화유산"이라고 적고 있다.

2부에서는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암각화를 인문학적으로 해부한다. 울산대 정재욱 교수는 유적 홍보 기법에서 감동을 주는 스토리텔링을 강조한다. 이런 스토리 정서를 기반으로 암각화 보존을 위한 시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것이다.

마지막 3부에선 반구대암각화의 보존과 관광자원화 방안을 모색한다. 김한태 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은 암각화의 관광자원화를 서둘다가 경관 훼손 문제에 부딪힌 과거의 졸속 행정에 경종을 울린다.

이달희 반구대포럼 상임대표는 "세계적 문화유산이 지역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고 "암각화 논문을 제대로 된 해외 학술지에 싣고 학회에 참석해 국제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작은 노력을 통해 대곡천 암각화의 보존과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년 울산대 공공정책연구소와 반구대포럼, 경상일보가 마련한 '반구대암각화' 특집엔 전국에서 32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10개월 동안 연재했다. 역사학, 고고학, 미술사학, 전공자들은 물론 지리학, 경영학, 행정학, 국문학 전공자와 시인, 소설가, 서예가, 만화가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진행되었다. 250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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