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의료 불균형 해법은 시골의사

입력 2017-01-20 04: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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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의사들은 돗자리만 안 깔았지 반은 '점쟁이'다. 진료실로 들어서는 할머니의 표정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대충 알아맞힌다. "집에 무슨 일 있죠? 돈 떼였어요?" 스스럼없이 건넨 한마디에 노인들의 마음은 사르르 녹는다. 자녀들이 도시로 떠나고 홀로 사는 고독에 지친 노인들은 온갖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하고, 자식이 속썩이는 이야기도 한다. 장날이 되면 시골의원은 동네 사랑방으로 변한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수다를 떨고 떨어져 살던 아들과 아버지가 진료 대기실에서 만나 안부를 묻기도 한다. 환자들은 진료가 끝나도 오래도록 병원을 떠나지 않는다. 시골에서 만난 의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할머니들은요. 이야기 들어주고 손 한 번 잡아주면 반 이상 낫습니다. 약도 필요 없어요."

시골의원에는 늘 먹을거리와 농산물이 넘쳐난다. 대부분 환자들이 가져다 둔 것들이다. 정재우 원재한의원 원장은 "가족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내 인생은 찬조 인생'이라고 해요. 노상 얻어먹고 다니니까. 환자들이 참기름도 짜오고 청국장도 담아오고, 콩이며 깨며 온갖 농산물도 가져다주거든요"라고 했다.

시골의사는 동네 아저씨가 되길 마다하지 않는다. 환자 자녀의 결혼식 주례를 서기도 하고. 세상을 떠난 남편이 자주 눕던 침상에 앉아 한참을 우는 늙은 아내도 위로한다. "병이라는 게 사실 심리적인 요인이 많아요. 병의 출발이 스트레스와 고민, 불안, 근심이기 때문에 대화로도 풀릴 수 있어요. 환자는 계속 아프다고 하는데 저는 계속 다른 얘기를 물어요. 집안 문제는 어떤지, 자녀들은 잘 있는지. 이래저래 묻다 보면 왜 아픈지 원인이 나와요." 문경중앙병원 이상일 원장의 얘기다.

하지만 '진짜' 시골의사를 만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의사의 대도시 편중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탓이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전체 의사 회원 가운데 경북에서 활동하는 의사는 지난 2005년 3.6%에서 2014년 3.1%로 감소했다. 경북의 인구 1천 명당 전문의 수는 1.15명으로 세종시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적다.

시골에서 개원했다고 다 같은 '시골의사'도 아니다. 경북의 한 의사는 "시골에 개원하는 젊은 의사들은 몇 년 동안 바짝 벌어 대도시로 뜨겠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철저한 이방인으로 머물며 환자만 보는 것이다. 이들은 대도시에서 출퇴근하며 낮 시간 동안 환자를 보는데만 열중한다. 지역 사회 활동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돈만 벌어가는 의사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 중의 하나가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다. 노인들이 동네의원 찾아가기 어려우니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활용해 편리하게 진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첨단 IT기기라도 환자의 감정을 전달하진 못한다. 장유석 경산 장유석외과의원 원장은 "의료라는 게 꼭 '1+1=2'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사람의 얼굴에서 읽어내는 감성적인 부분들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건 직접 만나고 마음을 열고 대화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정부의 대책이 맥을 단단히 잘못 짚었다는 뜻이다.

시골의 의료 불균형을 줄이려면 '시골의사'를 늘리면 된다. 지자체들이 귀농인들을 지원하듯 시골의사가 오랫동안 터를 잡고 환자들을 돌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낫다. 지역 의료계는 "적어도 군 단위에는 동네의원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세제 혜택이나 장기 저리 융자를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지적한다. 장기적으로는 개원 지역의 인구 수에 따라 건강보험수가를 조정해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노인들의 말벗이 되고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동네 주치의가 될 수 있는 건 결국 시골의사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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