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입맛따라 알아서 기는 정치 검찰 향한 '썩소'
1980년부터 2009년 현대사 30년
요리조리 변신 '철새' 검사 일대기
반전·역공…시궁창 같은 현실 풍자
조인성'정우성 앙상블 '안구 정화'
그는 목포 출신, 고등학교 일진 싸움왕이다. 어느 날 주먹왕에 사기꾼으로 목포 일대를 주름잡던 아버지가 집안으로 들이닥친 검사님의 옷자락을 잡고 고개를 조아릴 때, 진정한 힘은 권력에서 나온다는 걸 깨닫는다. 날렵한 몸으로 주먹을 흔들어봐야, 앞자리에 자리 잡고서 책에 코를 박고 있는 멸치 여드름 박사 안경쟁이들의 발아래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세상사의 법칙이란 것을 아는 순간 그의 운명은 변한다.
영화는 서울대 법학과 85학번 박태수의 회고록이다. 컬러TV가 시작된 1980년부터 한 대통령의 서거가 있던 2009년까지 30년 세월을 다룬다. 조인성의 말 빠른 내레이션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5명 대통령의 시기에 요리조리 변신했던 한 검사의 일대기를 읊는다. 과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복고풍, 사회 부조리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정치 드라마, 남자 스타들의 앙상블 등 최근 한국영화의 흥행 요소들을 두루 가져왔다.
2013년도에 910만 관객을 모은 흥행작 '관상'의 한재림 감독의 차기작이며, '쌍화점' 이후 9년 만에 주연을 맡은 조인성의 복귀작이다. 또한, 관록의 미남 배우 정우성이 카리스마 연기를 펼친다는 점에서 '더 킹'은 자연스레 2017년을 여는 최고 화제작으로 관심을 모은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 농단 사태 이전인 지난해 초에 촬영이 시작된 작품이지만, 최고 권력층의 갖가지 비리와 불법이 하나씩 드러난 지금, 시기를 잘 만난 작품임이 틀림없다.
검사 박태수(조인성)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폼 나게 살고자 한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부장검사 한강식(정우성)과 그의 수하 양동철(배성우)을 만나게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라인을 갈아타며 권력을 잡는 이들에게 어느 날 위기가 도래하고, 강식은 태수를 정리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태수의 오랜 벗이자 조폭인 두일(류준열)은 사고를 치며 태수를 곤란하게 만든다.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실제 역사 속에 살아간 한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서사구조를 갖춘다. 또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처럼 엄청난 권력과 부를 향해가다 좌절한 한 개인의 흥망성쇠를 화려하고 빠른 리듬감의 스타일을 통해 이야기를 엮어간다.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과 독백, 극적으로 치닫는 그의 인생 연대기는 다이내믹한 스타일과 속도감 있는 전개 방식에 실린다. 권력 기관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무거운 주제가 풍자적인 캐릭터화와 현란한 각종 표현적 스타일 탓에 코믹하게 전달된다. 상황 전개의 가벼움으로 인해 영화는 무게감이나 성찰성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낄낄거리며 울분을 해소하는 카타르시스적 효과에 방점을 찍는다.
신군부 쿠데타에서 민주정부를 지나 신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정권과 함께하며 권력을 휘둘렀던 검찰 조직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국민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현재, 영화는 검찰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과 열망이 반영된다. 권력에 맞게 얼굴을 바꾸어왔지만, 이제는 진짜 정의로운 검찰 조직을 바라는 집단의 희망 섞인 바람은 몇몇 영화들에서 발휘되어왔다. '부당거래'처럼 깰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가 관객으로부터 훌륭한 평가를 받았지만, '내부자들'처럼 진짜 정의로운 검사가 권력욕의 화신이 되길 거부하고 정의의 편에 서는 판타지 같은 결말에 관객은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영화는 현실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매체이며, 또한 집단의 기원을 환영적으로 해소해 주기도 한다. 현실이 막장일수록 영화에서나마 판타지 같은 행복한 결말을 염원하는 것이다. '더 킹'에서 거듭하는 반전과 역공은 시궁창 같은 현실을 한 발짝 떨어져 키득거리며 감상하게 하는 오락적 힘을 가진다.
30년 시간 전개는 시대별, 공간별로 달라지는 프로덕션 콘셉트 덕분에 지루하지 않으며, 실제 대통령들의 영상이 군데군데 삽입되어 한국 현대사를 한눈에 보는 재미를 준다. 권력자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서 그들의 시스템을 공격하는 영화의 이야기 전개에서 정치 검찰은 샤머니즘을 신봉하며 계절에 맞게 철새처럼 이동하는 우스꽝스러운 속물적 모습으로 표현된다.
현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고, 영화 제작에도 정권이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재갈을 물려온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비판정신과 풍자정신으로 충만한 영화가 밀려올 때이지만, 그 통쾌함은 권력자의 기세가 등등할 때만 못한 것 같다. 여러모로 전환기인 지금, 정치 풍자 서사가 다양한 장르의 틀 안에서 멋지게 변주되는 양상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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