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이드(Divide), 격차라고 많이 쓴다. 사회에 적용되면 차별이 되고, 부와 관련되면 분배 문제를 낳는다. 금융위기와 결합했을 땐 자본과 노동을 1:99로 대결시켰다. 디바이드에는 계층이 있고, 불평등이 있고, 갈등의 모습이 담겨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장기간에 걸친 디바이드는 반드시 허물어졌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붕괴시킨 프랑스혁명은 '앙시앵 레짐', 이른바 혁명 이전 프랑스의 구(舊)제도를 폐기하는 작업이었다.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도 구제도이다. 디바이드는 사람들을 광장에 모이게 하는 힘이 있다. 혹자는 광장을 옛 제도를 덜어내는 작업에만 국한시키며 새 제도를 만들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과연 그럴까? LED 촛불, 스마트폰 촛불을 든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새로운 촛불이 광장의 한계를 넘는다면 그것도 디바이드를 지우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컴퓨터는 사람의 도구이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사람들은 우려했다. "도대체 컴퓨터가 어디까지 가려는 거야." AI가 인간을 뛰어넘어 AI와 사람 사이에 디바이드가 생기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아널드 슈워제너거를 일약 세계적 스타로 만든 1984년산 영화 '터미네이터'의 지배자, 스카이넷(Sky net)은 우리가 맞이하게 될 AI가 될지도 모른다.
미래학자는 인간이 만든 마지막 컴퓨터가 2045년경에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싱귤래리티(Singularity)는 AI가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AI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점, 스카이넷이 인간을 지배하는 때를 말한다. AI가 만들어낼 싱귤래리티 사회의 도래를 막으려면 우리 주변의 작은 디바이드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나와 남의 차이를 이해하는 방정식이다. 디바이드를 지우려면 상대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동일시해야 한다. '인권의 발명'을 쓴 린 헌터는 상대방이 느끼는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생각하고 아파하는 과정에서 인권이 발명되었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감추어진 작은 디바이드 찾아내기, 그것이 AI가 우리를 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다.
디바이드에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디바이드는 그 속에 디바이드를 몰아낼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디바이드의 긍정성이라고 표현하면 지나칠지도 모르나, 우리가 품을 수 있는 희망이다.
골목길에서 만난 이웃에게 막걸리 한잔하자고 권해 보자. 차이에 좌절할 것 같던 마음은 이내 서로에 대한 따뜻한 이해로 바뀔 것이고,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디바이드는 조금 더 옅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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