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 속 신성한 계곡, 툼레이더 촬영한 폭포로 유명세
한 번도 비행기를 놓쳐버린 일은 없지만 출발 한 시간 전후 늘 공항에 도착한다. 작은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다녀서 수화물로 부칠 짐도 없고 하릴없이 공항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항 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PP카드를 만들면서부터는 공항에 일찍 가는 버릇을 들였다. 식사를 즐기며 느긋하게 대기 시간을 보낸다.
이번 캄보디아 씨엠립 여행은 여행자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뱅밀리어 사원과 프놈꿀렌(Phnom Koulen) 중심으로 계획을 잡았다. 늦은 밤에 도착했지만 씨엠립의 공기는 여전히 후끈하다. 호텔로 향하면서 여행이 수월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뱅밀리어 사원을 가려는데 교통편이 만만치가 않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이 아니라 혼자 가려면 택시를 전세 내야 한다. 비용도 많이 든다. 호텔 로비에서 정보를 구하는 나를 보고 한국 여행객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자기도 사원을 가려는데 마침 혼자라 같이 가겠느냐고 묻는다. 사진작가라는 한국인은 "뱅밀리어 사원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유적 답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만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구세주를 만난 느낌이다. 경비는 반반으로 부담하기로 하고 택시를 빌렸다. 뱅밀리어 사원은 씨엠립에서 약 60㎞ 떨어져 있다. 택시로 한 시간 남짓 달려 사원에 도착했다. '연꽃 연못'이란 뜻을 가진 뱅밀리어 사원은 수리야바르만 2세가 지은 수중사원이다. 베니스 궁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사원으로 가는 양쪽에 연꽃 연못이 쫙 펼쳐져 있지만 실제 사원의 모습은 폐허란 말이 가장 적절하다. 사원은 대부분 무너져 내렸고 비집고 올라온 나무들이 사원을 점점 더 빨리 파괴시키고 있다. 마치 쓰러져 가는 건물을 나무가 엮어 지탱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20여 년 전 처음으로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당시 앙코르와트도 심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자금'기술의 원조와 캄보디아 정부의 노력으로 상당 부분이 복원되었다. 지금도 현지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뱅밀리어 사원까지는 도움의 여력이 미치지 않는 모양이다.
사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정글을 탐험하는 기분이 든다. 코스의 절반은 길이 없어 여행자가 걸어가면 길이 된다. 짧은 코스로 한 바퀴 도는 데도 2시간 이상이 걸린다. 더운 날씨에 바람조차 없어 땀으로 온몸이 흥건하다. 물을 챙겨 오지 않아 연신 마른 침을 삼켜야 했다. 다시 입구로 나와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 후 부근 전통시장에서 닭고기와 현지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더위를 먹었나?' 음식이 입안에서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타고난 식성이지만 살짝 걱정이 앞선다. 맥주만 연거푸 여러 잔을 비우고 프놈꿀렌으로 향했다.
프놈꿀렌은 앙코르 지역 최초의 도읍이다. 씨엠립 강의 발원지인 프놈꿀렌에는 앙코르와트 유적 건설에 사용한 채석장이 있다. 산 정상에 와불이 모셔져 있는 사원 등 초기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캄보디아인들이 즐겨 찾는 이곳은 특히 웅장한 폭포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폭포로 가는 계곡 물속에는 여러 가지 형태로 새겨놓은 수많은 유물들이 잠겨 있다. 옛 크메르인들은 계곡물을 풍요를 가져다주는 성수로 여겼으며 현지인들 또한 이 물을 신성시 여긴다고 한다. 조그만 웅덩이 주위에서 꼬마들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다가가 보니 조그만 물뱀 한 마리가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있다. 폭포 가는 길은 꼬불꼬불하게 펼쳐진 숲속의 둘레길이다. 높지 않은 첫 번째 폭포를 지나 나타난 두 번째 폭포는 규모가 꽤 크다. 많은 사람들이 폭포수를 맞거나 수영을 즐기고 있다. 밀림 속에 비밀스러운 폭포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늦은 오후 시간, 유명한 푸라비다 마사지숍에 들렀다. 워킹스트리트 가는 입구에 있는 마사지숍은 여행자들에게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이용 가격이 좀 비싼 편이나 실력은 최고라는 평을 받는다. 아로마 마사지를 끝내고 나오니 이미 네온사인이 햇빛을 대신하고 있다. 종일 입에 맞지 않는 현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 터라 얼큰한 한국 음식이 간절했다. 6번 도로가에 위치한 보레이 아케이드에는 한국 식당들과 업체들이 많이 있다. '우당탕'이라는 중화요릿집을 찾았다. 주방장이 강추하는 짬뽕 맛은 예술이다. 60대 초반의 주방장은 그 나름 한국에선 잘나가던 요리사였다면서 방송국 출연 스티커를 여러 장 보여 주면서 으쓱해한다.
식당에서 나와 씨엠립 중심가인 워킹스트리트로 향했다. 멀지 않은 길이라 걸었다. 길가에 주인 없는 개들이 군데군데 늘어져 있다. 행인을 피하지도 않고 사납게 대하지도 않는다. 공존하는 느낌이랄까. 워킹스트리트 모퉁이에 있는 레스토랑 '레드피아노'를 찾았다. 앤젤리나 졸리가 즐겨 마셨다는 칵테일 '툼레이더'를 주문했다. 연한 블루 빛에 라임이 한 조각 살짝 떠 있다. 첫맛은 라임의 시큼함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게 하지만 이내 달콤하면서 깔끔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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