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이름 '호텔아미고뒤' '반야월저탄장앞' 버스 정류장서 읽힌다
간판 자국이 건물에만 남는 것은 아니다. 버스 정류장에도 남는다. 지명은 사라졌는데 그 지명이 적힌 버스 정류장의 이름은 바뀌지 않은 경우다. 대구에 몇 군데 있다. 그중 두 곳을 소개한다. 버스 정류장을 시간여행 접속 통로 삼아, 20세기 대구에서 전성기를 구가한 호텔 골목과 연탄공장 골목을 다녀왔다.
◆대구 최초 특급호텔 '금호호텔'
대구 서성로에는 '호텔 아미고 뒤' 버스 정류장이 있다. 정류장 이름 속 호텔 아미고는 2015년 12월 철거 공사가 시작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함께 사라진 이름이 또 있다. 호텔 아미고의 전신 '금호호텔'(금호관광호텔)이다.
금호호텔은 1946년 5층 규모의 대구 최초 특급호텔로 지어졌다. 1982년 12월 방화에 의한 대형 화재로 10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고, 건물은 전소됐다. 당시 방화범을 금호호텔까지 태워준 택시 기사까지 신문 기사에 등장했을 정도로 전국 언론의 취재 경쟁이 금호호텔로 향했다. 불이 난 후 4년 만에 금호호텔은 지상 19층 지하 2층 규모로 리모델링됐다.
화재로 부침을 겪은 잠깐을 제외하면 금호호텔은 대구 대표 호텔이라는 지위를 잃지 않았다. 그 명성 덕분에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됐다. 유력 정치인들이 대구에 오면 주로 묵었고 수시로 기자회견도 열었기 때문이다. 1971년 12월 한 신문 기사는 그해 12월 14일 달성'고령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소속 48명과 신민당 소속 48명 등 모두 96명의 국회의원이 유세 지원을 위해 대구에 집결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숙소인 금호호텔 로비가 국회의원들로 붐벼 마치 대구에 국회를 옮겨 놓은 듯했다고 표현했다. 이때 선거에서는 박준규(공화당) 전 국회의장이 당선됐다.
1991년 4월 1일에는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금호호텔에서 단독 회동을 갖고, 노태우 정권 공안 통치 분쇄와 지역감정 타파에 대해 뜻을 같이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여러 언론에서는 '두 김 씨의 역할은 이제 끝났다'는 당시의 세대교체론을 무마시키며 오히려 서로를 대권 투톱 주자로 공고히 하는 효과(요즘 말로 '윈-윈 효과')를 낸 조우였다고 평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영삼은 14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어 김대중이 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결과를 분석해 보면, 당시 금호호텔에서의 만남이 어느 정도는 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대구 출신 가객 김광석과 관련된 장소로도 그가 태어난 대구 중구 방천시장 및 김광석 길과 함께 금호호텔을 꼽을 만하다. 김광석이 전성기 때 고향에 와 금호호텔에서 이따금 콘서트를 열었기 때문이다.
금호호텔은 1993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쇠락의 역사로 진입했다. 이어 2003년 4월 소유주가 바뀌면서 이름도 호텔 아미고로 변경됐지만 2008년 2월 다시 휴업에 들어가는 운명을 맞았다. 결국 오피스텔 공사를 이유로 철거되면서 그 역사도 함께 마무리됐다.
◆대구 마지막 저탄장 '안심연료단지'
대구의 시내버스 정류장을 검색해 보면 '저탄장'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버스 정류장 3곳이 뜬다. 한 시내버스 코스 안에 연달아 배치돼 있는 '매여동(동구)저탄장' '상매동(저탄장)' '반야월저탄장'이다. 현재 매여동(동구)저탄장 버스 정류장은 주변 등산을 위해 찾는 방문객을 맞이하는 공간 및 시내버스 회차지로 쓰이고 있고, 상매동(저탄장) 버스 정류장은 현장에 가 봤더니 관련 시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반야월저탄장 버스 정류장은 바로 옆 안심연료단지와의 마지막 연결고리로 존재하고 있다. 안심연료단지의 옛 이름이 반야월저탄장이다. 지난해 대구시는 안심연료단지를 2020년까지 복합신도시로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안심연료단지는 사실상 폐쇄 수순을 밟게 됐다.
대구의 저탄장 역사는 대구 북구 칠성동 및 대구역에서 출발한다. 원래 칠성동에 저탄장이 있었고 바로 옆 대구역이 석탄 하역을 담당했다. 그러다 1971년 지금의 안심연료단지 자리가 저탄장으로 조성됐고, 대구역의 석탄 취급 시설도 저탄장 바로 옆 반야월역으로 이전된 것이다. 이즈음 대구역의 화물 취급 시설은 동대구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대구역이 지금처럼 몸집이 커져 대구 대표 기차역이 된 주 배경이다.
저탄장 이전 당시 반야월은 경산군 안심읍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저탄장 이전이 대구시민 공해를 우려한 것이라면 경산군민은 연탄가루 마셔도 되는 거냐"는 목소리가 저탄장 이전 직전인 1970년 10월 한 신문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반야월을 포함한 안심 지역이 대구 동구에 편입된 것은 10년 뒤인 1981년 7월의 일이다.
저탄장이 이전하면서 대구로 운송된 석탄을 연탄으로 만드는 연탄공장들도 함께 옮겨왔다. 모두 6곳. 그중 대성연탄은 국내 최초로 연탄공장을 세운 대성산업사(저탄장이 있었던 칠성동에서 1947년 시작)가 세웠다. 대성산업사는 국내 에너지 기업 대성그룹의 모태다. 이후 1990년대에 두 곳이, 2003년에 한 곳이 폐업해 대영연탄, 한성연탄, 태영씨엔이 이렇게 세 곳의 연탄공장만 남아 운영을 지속해 왔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있었던 연탄공장들의 간판 자국이 지금 안심연료단지 곳곳에 남아있다.
안심연료단지 폐쇄는 인근 시멘트 공장의 영향까지 더해져 이곳 일대가 대구의 대표적인 먼지 유발지역으로 꼽히면서, 주민 건강 침해를 이유로 꾸준히 요구돼 온 것이다. 이미 1980년대부터 언론에서는 안심연료단지에서 발생하는 연탄가루 공해에 대해 '흑사(黑沙) 현상'이라고 지칭하며 주민 건강 문제도 함께 지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구선 철도 이설 문제도 겹치면서 반야월역은 2008년 2월 폐쇄됐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안심연료단지도 최근 문을 닫는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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