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광기(狂氣)의 끝이 어떨 것 같은가?

입력 2017-01-16 04:55:05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광장의 분노에 편승한 정치판 가관

국격·국가미래는 이미 안중에 없어

오직 권력 잡기 위한 선동만 넘쳐나

국정농단 특검 '삼성 특검'으로 변해

세상이 미쳐 있다. 대중은 대통령을 끌어내려 화형(火刑)에 처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 언론은 그 불이 빨리 지펴지기만을 기다린다. 정치판은 대혼란이 벌어졌다. 제 살길을 찾아 뛰어다니는 잡상인 같은 족속부터 눈앞에 어른거리는 권력에 벌써 취해버린 과두(寡頭)들까지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처음부터 '박근혜 게이트'였다. 대통령은 대통령답지 못했다. 국정 의제에 관해 별다른 지식이 없었던 그녀는 참모들과의 대화를 피했으며 자연스레 대면보고도 사라졌다. 장관도 수석비서관도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다. 십상시 소리를 듣던 의원들조차 대통령과 일 년에 한두 번 통화하는 정도였다. 모든 통로는 최순실이라는, 영악한 강남 아낙네가 심어놓은 문고리 3인방이 장악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그저 군림하기를 원했을 뿐, 대한민국이란 거함을 지휘할 능력도 용기도 없는 혼군(昏君)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대통령을 둘러싼 추문은 권력을 두고 암투를 벌인 궁중 드라마가 아니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대중은 이처럼 낙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문민정부든 측근 부패와 혈족(血族)의 농단(壟斷)이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이건 그냥 범죄 드라마였다. 그것도 잡범(雜犯) 수준의 저급한 드라마 말이다. 사람들은 이 형편없는 수준의 잡범들에게 대통령이 가담한 데 대해 수치감을 느낀다. 적어도 권력 농단이라면 그런 짓을 할 만한 자들이 벌여야 어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최순실 일당은 어디를 살펴봐도 그럴 '깜냥'이 아니었다. 최순실 차은택 같은 인물은 물론 김종이니 김종덕이니 하는, 한자리 꿰찬 인물들은 하나같이 수준 이하였다.

그런 자들이 대통령을 끼고 대기업을 옥죄어 재단을 만들고, 그 재단을 발판 삼아 '사업'을 벌였다. 광고기획이라는 손쉬운 종목으로 돈을 챙기고, 승마 특기생으로 포장한 정유라라는 철부지 딸까지 이용해 돈을 뜯었다. 대통령은 한통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철저하게 놀아났다. 수석비서관을 통해 대기업에 공갈성 청탁을 했다. 심지어는 독대란 걸 하면서 노골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시장판에 자릿세 뜯는 조폭 두목 행세를 한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도 몰랐던 측근 부패라고 강변하지만, 정말이라면 그녀는 무대 뒤편에서 조종하는 실에 매달린 인형인 셈이 된다.

그러니 대중의 분노가, 실망과 낙담이, 그리고 이것들을 해소하기 위해 출구를 찾아 헤매는 거대한 광기(狂氣)가 분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집단적 복수심 같은 것이 꿈틀댄다. 부정한 방법으로 그리고 교묘한 편법으로 축재하고 호의호식하며 권력을 부리던 자들의 배후에 이런 더러운 '관계'가 놓여 있었던 데 대한 분노다. 거기에 정치를 비롯한 기존 질서에 대한 분노와 가진 자 배운 자들이 중심이 된 기득권자들에 대한 막연한 분노가 더해졌다. 이 광장의 분노에 편승한 언론은 관련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인격 말살을 서슴지 않는다. 어떤 변명도 가납(嘉納)지 않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정치판이다. 국격(國格)이니 국가의 미래니 하는 건 이미 안중에 없다. 오직 권력을 잡기 위해 벌이는 선동만이 넘쳐난다. 그러니 '대통령을 끌어내려 당장 구치소로 보내야 한다'는 말은 점잖은 편에 속한다. '땅에 파묻자'는 말을 들을 땐, 그 말이 아무리 문학적 비유라 치더라도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들은 더 자극적인 말을 찾는다. 어떤 말을 해도 대중의 광기를 충족시키면 박수를 받는 것이다. 말하자면 형장에 오른 도부수(刀斧手)가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에게 잘린 죄수의 머리를 들어 보여 환호를 받는 형국이다.

청문회는 한술 더 떴다. 재벌 총수를 죄다 불러놓고 '촛불시위에 가본 사람은 손 들어보라'는 해괴한 질문을 던졌다. 의원들은 누가 더 망신주기에 능한지 경쟁을 벌였다. 더 놀라운 건 이런 의원들을 '청문회 스타'라며 띄우기에 바쁜 언론의 태도다. 특검도 덩달아 춤을 춘다. 정유라에게 주지 말아야 할 학점을 줬다 해서 교수를 긴급체포하고 구속했다. 아마 지금쯤 수많은 대학교수들이 오금이 저릴 것이다. 최순실 일당 국정 농단 특검은 어느새 '삼성 특검'이 됐다. 재벌개혁이 특검의 목적이 된 것이다. 청문회든 특검이든 이런 건 대중의 광기 때문이다. 그 광기에서 벗어날 재간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 끝이 어떨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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