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품은 돌계단 천천히 오르면…다시 태어난 기분
신년을 맞아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힐링 장소를 소개하고 그곳과 얽힌 이야기를 전한다. 일상에 찌들어 쓰러지고 싶을 때 문득 떠오르는 안식처, 마음의 고향이 되는 '그곳'을 격주마다 싣는다.
'어떻게 이런 데를 찾아냈을까?'
경북 성주가 고향인 문인수 시인은 '세종태실'(명확히 말해서 세종대왕자 태실로 세종의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있다)을 자신의 '그곳'이라고 했다. 50대 이상의 성주 지역민들은 이곳을 소풍 와서 보물찾기하던 곳으로 기억했다. 1975년 발굴되기 전까지 인근 학교 학생들의 인기 소풍 장소였다고 했다.
좀 더 공간을 한정하자면 문 시인이 안식처로 꼽은 곳은 태실(胎室)이 있는 언덕, 태봉(胎峰)으로 가는 길이다. 돌계단 110개 남짓의 거리로 길지 않다. 굳이 거리로 재자면 150m 정도.
오르는 길이 여느 산의 계단과 뭐가 다르랴만 태실로 오르는 길이다. 태실은 시신을 매장한 묘와 성격이 다르다. 묘가 생의 마무리라면 태실은 태어남의 상징이다. 문 시인은 이곳에서 새로 태어나는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시인이 추천한 이곳을 걸어봤다. 규칙 없이 늘어선 소나무들이 돌계단을 품은 모양새다. 천천히 올라야 했다. 시인의 당부이기도 했다. 무릎을 오므렸다 펴며, 근육이 꿈틀대면 심장은 펄떡였다. 뇌는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다리를 움직이니 머리가 정리됐다. 시인이 천천히 오를 것을 주문한 이유였다.
문 시인은 3년 전부터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거동이 쉽잖다. 그런 그에게 이곳은 옛 기억으로 통하는 '문'(門)이다. 힘들더라도 일단 열고 들어서면 1960년대, 20대의 문인수가 된다.
태실 뒤로 선석산과 방올음산이 있다. 시인의 4번째 시집 제목이기도 한 '홰치는 산'(1999년)이 바로 여기다. 문 시인에게 시집 '홰치는 산'은 '나고 자란 곳에서 듣고 보고 냄새 맡아 본 것들, 때론 직접 겪은 것들을 기록한' 시집이었다. 세종태실은 시인의 집에서 20리(약 8㎞) 거리라 했다. 젊을 때 사람 구경하러 많이 왔던 그곳이 이젠 삶을 관조하는 쉼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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