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권정생 문학기행

입력 2017-01-13 04: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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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세상 놀러온 아이들 방명록 빼곡

권정생 동화나라 전시관에 있는 그의 생각 한 점.
권정생 동화나라 전시관에 있는 그의 생각 한 점.

'현장에 가면 답이 나온다'는 말은 비단 기자나 행정가들만의 금과옥조는 아니다. 문학계에서도 불문율이다. 문학 작품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발로 쓴다는 말이 있다. 글을 쓰기 전 작가도 충분히 현장을 보고, 느끼고 써내려간다. 열혈 독자들이 문학기행에 나서는 이유다.

◆빌뱅이언덕 아래 집

그런 점에서 권정생(1937~ 2007년) 문학기행의 주된 손님은 어린이들이다. 어른들은 안내를 맡는다. 그가 살던 집 부근에 오면 '강아지똥'의 돌이네 흰둥이가 똥을 눈 자리가 여기 어디쯤 되겠거니, '엄마 까투리'의 까투리 새끼들이 이 어딘가에서 엄마 품을 그리워했겠거니 하고 그려준다.

권정생이 살던 집은 바깥에서 봤을 땐 아담하고 예쁜, 동화의 한 장면이다. '빌뱅이언덕'이라 불리는 야산 아래 작은 집이다. 마당 한가운데 '뺑덕이네'(개집)가 있고 봄이면 그 옆으로 피어날 봄꽃나무들이 줄 서 있다. 그러나 그의 숨결이 사라진 지 10년. 방안은 꽁꽁 얼어 있다. 한겨울 삭풍이 제집처럼 드나든다. 봄이 와도 겨울일 것만 같다.

아동문학가로 알려진 그의 집은 동화가 아니었다. 모든 동선이 불편함 투성이였다. 심지어 그는 병마와 사투를 벌이느라 소변 줄을 달고 움직여야 했다. 고시원이 따로 없었다. 생전에 쌓아둔 책과 앉은뱅이 책상이 있었음을 떠올리니 좁아도 너무 좁았다.

그런데 그에겐 돈이 있었다. 90여 편의 작품에서 들어오는 인세만 연 1억원, 10억원의 자산도 있었다고 한다. 자신에게 쓰지 않았다. '아파 죽겠다'는 유언장을 남기면서도 그 돈은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했다. 아이들과 문학기행 왔다가 정작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는 이는 어른들이다. 방문 바깥에 놓인 방명록을 들추니 죄다 아이들의 글씨다. 부끄러웠던 어른들은 차마 글을 남기지 못했던 걸까.

◆권정생 동화나라

권정생 문학기행의 단골 방문지, '권정생 동화나라'는 그가 살던 집과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옛 안동 일직남부초등학교다. 교실 2개 정도를 이어 붙인 전시관은 소박하다. 그의 친필과 작품 일부를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 많다. 빌뱅이언덕 아래 그가 살던 방을 재현해 놓은 곳에는 '좋은 동화 한 권은 백 번 설교보다 낫다'는 문구가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두어 걸음 옆에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 쓴 유언장이 나란히 있다. 각각 '유언장 1, 2'라 이름 붙었다. 그중 정호경 신부에게 쓴 편지글은 날것의 고통이 생생하다. 그런데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 통증' 속에서 '굶주리는 북쪽 아이들은 물론 중동, 아프리카, 티베트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다.

약자의 편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어린이들은 행복해야 한다던 권정생. '아팠기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다'는 그의 글에 다시 한 번 어른들의 눈시울은 붉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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