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근교 산의 재발견] 대구 지묘동 응봉~응해산~왕산

입력 2017-01-12 04:55:06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목숨 버려 왕건 구한 신숭겸, 영웅담 잠든 파군재

대구 지묘동 응봉으로 향하는 입구에는 신숭겸 장군의 신위가 모셔진 표충사가 있다. 공산전투에서 주군인 왕건을 구하고 순절한 신숭겸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표충단.
대구 지묘동 응봉으로 향하는 입구에는 신숭겸 장군의 신위가 모셔진 표충사가 있다. 공산전투에서 주군인 왕건을 구하고 순절한 신숭겸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표충단.

한(漢)의 유방이 항우에게 포위됐을 때 기신(紀信)에게 장수복을 입혀 탈출한 일화는 유명하다. 분노한 항우는 기신을 참살하며 분노를 삼켰지만 이때의 실수로 천하의 패권은 유방에게 돌아가고 만다.

어디서 낯익은 장면이 하나 오버랩된다. 왕건, 견훤의 팔공산 동수대전에서 사지에 몰렸던 왕건이 신숭겸으로 변복하고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장면이다. 이때의 기지로 위기를 벗어난 왕건은 후삼국 통일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근교 산' 이번 주는 영웅담의 현장인 파군재 일대 봉우리들을 다녀왔다. 왕건과 신숭겸의 발자취를 따라 응봉-응해산-왕산으로 올라보자.

◆신숭겸 장군 순절한 곳에 표충단 세워

파군재를 지나 팔공보성아파트에 이르면 좌우로 크고 작은 산들이 펼쳐진다. 공산댐을 품은 오른쪽이 감태봉-문암산-공산 줄기고 뒤쪽으로 봉긋봉긋 솟은 산들이 응봉-응해산-왕산 자락이다.

응봉으로 향하는 입구에 신숭겸 장군의 신위가 모셔진 표충사가 있다. 추모사당 단(壇) 앞에서 길손들의 발길이 멈춰 선다. 공산전투에서 주군을 구하고 순절한 장군을 추모하는 표충단이다. 단 옆엔 잎과 꽃을 떨군 백일홍들이 붉은 꽃 색을 투영시켜 장군의 충절을 위문한다.

'동관전투'에서 마초에게 쫓기던 조조가 수염이 잘리고 홍포(紅袍)가 찢어지는 중에도 변복을 자청한 장수 하나 없었던 점을 생각하면 왕건의 인품과 리더십은 한 국가를 경략할 만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하겠다.

◆산행 중 애틋한 묘비에 가슴이 뭉클

신숭겸 사당 앞에서 오른쪽 임도로 잡아들어 5분쯤 걸으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직진하면 만디체육시설-열재를 지나 파계사로 연결되고 오른쪽으로 굿당 하나를 끼고 들어서면 응봉 가는 길이다. 응봉으로 오르는 길은 송림이 우거진 한적한 길. 경사가 완만해 혼자 사색을 하며 조용히 오르기에 좋다.

10분쯤 지나니 아담한 묘역이 나타난다. 오석(烏石)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몇 해 전에 먼저 세상을 등진 남편을 향한 한 부인의 '사부곡'(思夫曲)이었다. 한 줄 한 줄 애틋한 연민이 묻어났다. 묘비를 헌사 받은 것만으로 망자는 충분히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공파니 학생지묘니 하는 의례적 묘비보다 시 한 편이 훨씬 가슴에 와 닿는다.

자꾸 달라붙는 비문의 상념을 털어내며 응봉으로 향한다. 정상(456m)에 이르니 김문암 씨가 쓴 정상 현판이 반긴다. 그는 이름 없는 산에 명패 달아주는 일을 22년째 하고 있다. 180도로 열린 정상엔 파계재에서 동봉에 이르는 팔공산 자락이 한눈에 펼쳐진다.

◆응해산에 서면 팔공산 산군들 한눈에

응봉에서 오늘 산행의 중심 응해산(506m)으로 향한다. 이 구간은 만디체육시설까지 내려와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들기 때문에 전체 코스에서 가장 지겹고 힘들다. 하지만 능선을 따라 걷노라면 좌우로 산군들의 파노라마가 펼쳐져 피로가 싹 사라진다. 왼쪽으로 동서변의 가람봉과 함지산 줄기가 열리고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도덕산, 내동, 파계사 쪽 풍경도 무척 평화롭다.

응해산엔 정상석이 없고 꼭대기 철탑이 정상 구실을 한다. 대구의 산악지도에는 응해산이 두 곳 등장한다. 이곳과 바로 앞 도덕산 줄기에도 응해산으로 표기된 봉우리가 하나 있다. 산꾼들은 편의상 두 곳을 구분해 이곳을 동(東)응해산 맞은편을 서(西)응해산으로 부른다.

철탑을 돌아 왼쪽으로 진행하면 오늘의 종점 왕산으로 이어진다. 워낙 오지인데다 인적이 드물어 가끔 멧돼지, 고라니와 맞닥뜨리는 일도 자주 있다. 왕산 쪽으로 접근할수록 불편한 점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한다. 길엔 가시덤불, 억새가 무성해 등산로라고 하기에는 길이 험하다. 이런 상태라면 잡목이 우거지는 여름, 가을엔 산행이 불가능할 듯싶었다. '왕건길'을 정기적으로 정비할 때 잡목을 베어내면 이 구간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왕산에 이르니 감태봉 밑 공산댐 호수가 잔물결로 일렁인다. 대구에서 흔치 않은 호수 경관(뷰'view) 중 하나다. 언제 기회가 되면 호수 기슭을 따라 문암산-감태봉-공산 일대를 돌아보기로 한다.

◆왕건, 자신의 묘터 양보하며 장군께 조의

파군재와 미대동 사이에 있는 왕산(王山) 정상에 서면 지묘동 쪽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왕건은 이곳 어디쯤 망루를 치고 산 아래를 내려보며 군대를 지휘했을 것이다. 화살이 내를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룬 전투에서 왕건은 패했지만 이내 전열을 정비하고 민심을 수습해 7년 후 후삼국 통일 대업을 이루었다.

천하를 통일한 왕건의 업적과 무공이 잠시 빛을 거두는 장소가 있으니 바로 왕산 밑자락 표충단이다. 신숭겸이 순절했다는 바로 그 장소다.

왕건은 장군을 위해 자신이 쓸 묘터까지 양보했고 적에게 참수당한 머리를 황금으로 만들어 충절을 기렸다. 주군이 왕관을 벗고 두 손 모아 술잔을 올렸으니 남자 일생 그 정도면 족하지 않겠는가. 응봉 가는 길 묘비 속의 한 남편처럼….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