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큰 틀에서는 의견 일치가 되었지만 세부 사항을 의논하다 보면 어그러질 수도 있다는 말로 많이 쓰인다. 일을 망치는 건 의외로 작은 문제일 수 있으니 좀 더 꼼꼼하게 일을 챙겨야 한다는 의미도 되겠다. 그런데 이 말은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작은 문제라고 무시하지 말고 잘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 일의 성패는 결국 세밀한 부분을 얼마나 꼼꼼하게 살피느냐에 달렸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악마와 디테일 운운은 특히 정치권에서 자주 접한다. '총론 합의, 각론 난항'이다. 비단 정치 얘기만도 아니다. 우리들 모두 대체로 그렇지 않은가 싶다. 큰 틀에서 개혁해야 한다는 거창한 말은 많이 한다. 하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어떻게'에 들어가면 슬그머니 목소리가 작아진다. 그래서 늘 그런 주장은 비슷하게 끝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해가 바뀌면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는 식상하다. 올해는 그 정도가 유난히 더 심한 듯하다. 지난해부터 워낙 황당한 일을 많이 접해서일 것이다. 정권을 교체하고, 헌법을 개정하고,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논의가 무성하다. 실패한 정권과 세력은 당연히 교체되어야 한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이 교대로 정치를 주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헌법이 문제라면 새로 만들 수도 있다. 헌법은 종교의 경전이 아니다.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다고 고집할 이유는 없다. 결선투표가 그렇게 좋은 거라면 어서 도입해야 마땅하다. 개인적으로 대통령 결선투표는 헌법 개정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합의에 의해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다면 못 할 것도 없다.
문제는 역시 디테일에 있다. 정권만 교체되면 세상이 달라지나. 새 대통령만 뽑으면 나라가 새롭게 될 수 있을까. 헌법만 바꾸면 지리멸렬한 정치가 갑자기 멋지게 바뀔 수 있을까. 정치인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여 과반 득표만 하면 국민의 절대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탄생할까. 요즘 아이들 말로 하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우선 거론되는 사람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후진적이고 퇴행적인 지금의 정치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 만무하다. 권력분점, 임기 단축,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 개헌 얘기만 해도 그렇다. 오직 자기 세력이 권력을 잡는 데 유리한 방법이 무엇인지에만 관심이 있는 논란들이다.
한 방에 판을 뒤집는 묘수는 없다. 국정 운영의 디테일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 지도자도, 다음 정권도 지금까지와 같은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식인들과 언론에 제안하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나라 운영의 세밀한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큰 얘기만 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관심을 기울이고 바꾸어 가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우선 나부터 그렇게 하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그런 논의를 하나씩 이어 가려 한다. 주제는 이런 것들이다. 청와대 비서실 개편, 총리의 국무위원 추천권 보장, 국회의원과 국무위원 겸직 금지, 대통령의 당적 이탈, 검찰권 행사의 국민 감시제도, 정치와 교육의 철저한 분리 등이 그것이다. 번거롭게 헌법을 바꾸지 않아도 법률 개정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관심과 성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상반기까지 이 지면이 주어진다면 앞으로 하나하나 독자들과,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해 보고 싶은 주제들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디테일한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더 좋은 의견을 알려 주시면, 그래서 함께 지혜를 모아 갈 수 있다면 멋진 한 해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올해는 새해 첫 글을 보통 때와 다르게 맺는다. 악마가 디테일에 있다면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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