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조건은 아니지만 번역가가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할 때 작업은 다소 수월해진다. 최근 내가 번역한 책의 주제는 '나이 들어감'이었다.
간략하게 말해서 나이 듦은 사회적 역할과 기대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이며 그런 의미에서 부단한 성장을 의미하지만, 정책과 문화적 차원에서 복잡한 구조를 통해 조작되고 이용되는 물질성을 지닌다. 따라서 거대 구조의 흐름에 맥없이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늙어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영감과 교훈을 얻었다.
메일만 주고받던 출판사 담당자를 책 출간 이후 처음 만났다. 40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듣던 기억이 생생하고 익숙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열일곱이라고 하자 살짝 놀라는 상대에게 별생각 없이 내가 실은 오십이 넘었노라고 알려준 까닭은. 아뿔싸, 그 사람은 내 나이에 비해 아이가 꽤 어리다고 놀란 것이지 그 나이의 아들을 두기에 젊은 외모를 가졌다는 뜻을 내비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혹은 불행하게도 그것을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깨달았다.
요즘은 결혼과 출산이 없거나 늦어지니 모자가 50대와 10대인 것이 그리 흔치 않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숨은 편견이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수개월 동안 나이 듦을 주제로 씨름했음에도 나이 들어감을 부정하는 말이 무의식중에 툭 나오다니. 안다는 것은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하되 그 알맹이를 살아냄으로써 완성되어 가는 그 무엇인가 보다.
나이 드는 것에 천형의 이미지를 씌워서 이를 역이용한 것이 안티에이징 관련 상품이다. 노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누리기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이웃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생기는 주름과 처지는 살, 느려지는 여러 기능과 민첩성, 문제의 기억력, 흰 머리카락은 부끄럽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변을 돌아보고 시간의 흐름을 관조하라는 자연의 인증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노년의 현상들을 감추거나 위장하려고 애쓴다.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중 수많은 안티에이징 상품과 부추김에 둘러싸인 탓이 크다. 태어나면서 안티에이징 광고에 노출되는 세대라면 평생 늙음을 거부하고 폄하하는 쪽으로 기울어질 것 같다.
누구나 늙는다. 그렇다고 상품 전략과 문화적 조작에 이용당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내 안에 박힌 안티에이징 강박증부터 냉정하게 인식한 후 뜨겁게 늙음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소멸해 가는 생명을 구하는 일에 자신의 온전한 역할을 다 하는 대신, 안티에이징 시술에 먼저 몸을 맡기는 치명적 중독에 빠지지 않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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