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어머니의 전화

입력 2017-01-05 04:55:02

우리 나이의 가장들이 지난 한 해를 반추하며 새 희망을 설계할 연초에 나는 홀로 계신 내 어머니 생각에 잠겨 있다네.

내 어머니 이야기이니 그냥 한 번 읽어나 주시게. 마침 수업이 없어 창밖의 봄볕을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전화를 한 거야. 안부도 묻지 않고 대뜸 경북대학교병원인데 위암이라서 내일 수술한다고 하더라. 청천벽력이 여러 번 일어날 일을 참 쉽게도 말하고는 전화를 끊는 거야.

병원에서는 더 가관이었어.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마무리 못 한 집안일들을 열거하며 의사가 회진할 때마다 퇴원시켜 달라 조르는 거야. 대단한 내 어머니가 결국 이겼고 퇴원 날짜도 일주일 정도 앞당겨졌다네.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집에 왔는데 그때가 어머니가 우리 집에 두 번째 오는 길이었다네. 언제나 어머니가 부르면 주말마다 내가 시골집에 갔으니까. 어머니는 포항 우리 집에 오자마자 피곤해서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거야. 나는 어머니가 쉬거나 졸거나 제대로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네. 아마도 어머니의 신조는 '기대지 말자, 눕지 말자'일 거야. 어머니가 나를 시골로 부를 땐 "누구네 아들과 사위는 감나무에 약 벌써 다 쳤다"고 하거나 "감 따기가 늦어 우리 밭 감만 홍시 다 됐다"고 하지. 내가 시골에 가면 어머니는 횡재하는 날이야. 다음 날이 시골장이 서는 날이면 더 그렇지. 새벽까지 준비한 어머니의 보따리들을 주섬주섬 내 차에 싣고 '풍각장'이나 '청도장'으로 가는 거야. 시골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시장에 내다 팔 푸성귀를 다듬거나 그것들을 쉴 새 없이 여러 보퉁이에 나눠 담고 있다네.

아픈 몸으로라도 어머니가 우리 집에 왔으니 나는 장남 노릇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네. 그런데 웬걸! 3일째 되던 날 어머니는 갖고 갈 보따리를 다 챙겨서 새벽 댓바람부터 나를 깨우는 거야. 시골로 가는 도중엔 먼 친척이 하는 미나리 밭으로 가자더라.

어머니는 타고난 장사꾼이라네. 시골 논밭에서 나는 온갖 것들이 5일장의 훌륭한 돈벌이가 되니까. 문제는 혼자 농사지으며 미나리 밭, 마늘 밭을 전전하며 일당벌이를 한다는 거야. 돈 벌어 뭐 하냐 물었더니 병원비에 쓴다고만 하더라. 시골 농산물 판로는 어디 많더냐? 그러니 어머니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에게 반강매를 시키거나 며느리를 감 장사로 둔갑시키거나 지난번처럼 우리 동기들한테 감 팔아 달라 고구마와 마늘도 팔아 달라 사정한다네.

사실 어머니는 지난가을 경운기 사고로 지금 대구 여동생 집에서 쉬고 있다네. 결국 몸이 다치니까 쉬는구나 하며 민망스러워하는 어머니한테 매몰차게 핀잔을 줬지. 두서없는 글 이만 줄이겠네. 자네나 나나 올해는 효도 좀 하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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