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남들처럼 걸어서 학교에 가고 싶어요"
덤덤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한유진(가명'16) 양이 학교 얘기가 나오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저도 남들처럼 걸어서 학교에 가고 싶어요." 유진 양은 오는 3월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한 달 전 불의의 사고로 거동을 못 하게 된 유진 양이 입학식에 갈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아버지(50)는 "예쁜 교복 사준댔잖아. 학교 갈 수 있으니까 울지 마"라고 눈물을 흘리는 딸을 달랬다. 하지만 유진 양의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만 거듭하던 유진 양이 병실이 떠나갈 듯 오열했다. "날 이렇게 만든 애들은 멀쩡한데 난 이제 아무것도 못 하잖아! 혼자서 앉지도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학교를 가!"
아버지는 딸을 달래는 데 서툴렀다. 북받치는 눈물을 참다못한 아버지가 병실 밖으로 피했다. 휴게실에 홀로 앉은 아버지는 고등학교 입학 허가서를 들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구타당하다 5층에서 뛰어내려
유진 양이 끔찍했던 그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사고를 당한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떤 언니가 제게 전화를 했어요. 자기 남자친구가 몰래 저랑 만난다고 화를 내는 거예요. 사과하라기에 오해를 풀려고 그 언니가 부르는 곳으로 찾아갔죠." 컴컴한 저녁, 유진 양은 한 빌라로 불려가 1시간이 넘도록 두들겨 맞았다. 고통과 두려움에 몸서리치던 유진 양은 화장실로 몸을 피한 뒤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응급실에 실려간 유진 양은 11시간에 걸쳐 대수술을 받았다. 그 후로도 2, 3일에 한 번씩 13번이나 수술대에 올랐다. 땅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 난 양발의 뒤꿈치에는 고정핀을 여러 개 박았다. 추락의 충격으로 부러진 요추 3번 뼈는 철심으로 고정했다. 앞으로는 피부가 괴사한 발에 피부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 언제 퇴원할 수 있을지, 다시 걸을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유진 양은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한바탕 눈물을 쏟는다. 아버지는 유진 양이 마취주사를 맞고 잠이 들 때까지 곁을 지킨다. 유진 양의 아버지는 말했다. "어린 아이가 한두 번도 아니고 십수 번을 홀로 수술실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무섭고 겁이 나겠어요."
◆회사 그만두고 딸 곁을 지키는 아버지
유진 양은 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어머니는 유진 양이 태어난 지 1년 만에 가출했다. 아버지는 집에 남아 있던 아내의 사진을 모두 버렸다. 유진 양은 함께 사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가 정을 많이 주고 귀하게 키운 덕에 유진 양은 활발한 아이로 자랐다. 할머니가 기력이 떨어질까 유진 양은 스스로 밥상을 차리고 시장도 직접 봤다.
"말썽 부린 적이 한 번도 없는 착한 아이인데…." 새벽에 유진 양이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간 유진 양의 아버지는 사고 이후 1주일간 밥 한술 뜨지 못했다.
아버지는 2주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어떻게든 딸의 병간호는 직접 하고 싶었다고 했다. "매일 집에 늦게 들어가고 지금껏 딸한테 신경을 못 썼어요. 지금이라도 곁을 지켜야죠." 한 달 만에 1천300만원이 된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지만 아버지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지금은 유진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제가 젊으니 병원비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요즘 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유진이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다. 1주일에 한 번씩 면회를 오는 친구들과 있을 땐 유진이도 아픔도 잊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아버지는 말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유진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아요. 다음 주에는 누가 올까 기대하면서 병원 생활을 견디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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