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찾는 손님 줄고 촛불집회엔 온통 닭 조롱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와 3년간 머무른다는 3가지의 재난 '삼재(三災)'에도 세 종류가 있다.
첫해는 삼재가 들어온다는 들삼재, 둘째 해는 삼재가 눌러앉는다는 눌삼재, 셋째 해는 삼재가 나간다는 날삼재다.
붉은 닭띠 해인 2017년 정유년은 닭띠에게 날삼재의 해이지만, 삼재가 나간다는 뜻이 무색하게 닭들은 정초를 맞기 전부터 수난을 겪고 있다.'
◇ AI에 닭의 해 코앞에 두고 죽음 맞아…사람도 아프다
두 달 전 충남 천안에서 채취한 야생조류 분변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검출됐을 때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커질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도 안 돼 전남 해남군에서 산란계(알 낳는 닭) 2천여 마리가 폐사하더니 두 달 사이에 1만 배인 2천만 마리가 넘는 닭이 '닭의 해'를 코앞에 두고 살처분됐다.
닭만 아픈 게 아니다. 사람도 아프다.
AI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살처분 투입 인력은 한 명당 하루 500마리의 닭을 땅에 묻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나 용역업체 근로자들의 후유증은 엄청나다. 경북 성주군에서는 AI 업무를 담당하던 군청 공무원이 과로로 숨졌다.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며 키운 닭들이 포대에 담겨 중장비로 실려 나가 땅에 묻히는 걸 봐야 하는 사육농들은 '닭들의 비명이 떠나지 않는다'고 호소할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살처분 보상금마저 언제 나올지 몰라 경제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 촛불집회 개근했건만…풍자·조롱 단골 소재 된 '닭'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에서는 닭을 조롱하는 문구나 퍼포먼스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정치적 주장을 하는 촛불집회에서 생뚱맞게 닭이 등장한 것은 일부 누리꾼이 박 대통령을 비꼬면서닭을 풍자의 도구로 활용해서다.
지난달 촛불집회에서는 한 집회 참가자가 누르면 '꼬끼오'소리가 나는 닭 인형을 '박근혜 퇴진' 피켓과 함께 줄에 매달아 바닥에 끌고 다니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 다른 참가자는 '촛불 모이면 닭 삶는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촛불로 닭을 삶는 퍼포먼스를 했고, 일부 시민은 애완견의 등에 '닭 잡는 개'라고 적힌 종이를 씌운 채 행진에 참여했다.
집회 장소에서 한 가공식품 업체는 '먹고 힘내서 닭 잡아봅시다'라고 적힌 닭발 진액을 무료로 제공했고, 닭과 촛불이 그려진 깃발과 닭 머리 가면을 쓴 시민들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을 닭에 빗대 인신공격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비난할 때 특정 동물이나 집단을 빗대는 것은 올바른 현상이 아니다"라며 "닭이 머리가 나쁘다는 편견을 재생산하는 것은 또 다른 편견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닭은 안 귀엽다?…캐릭터 업체마저도 외면하는 닭
새해가 되면 12간지 중 그해에 해당하는 동물의 캐릭터 상품이 특수를 누린다. 그러나 '친근하지 않은 외모' 탓인지 닭 캐릭터는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는 듯하다.
지난달 잇따라 닭 캐릭터 관련 상품이 나오면서 전년 동기보다 닭 관련 상품 판매량이 소폭 올랐지만 다른 동물 캐릭터 상품과 비교하면 폭발적이지는 않았다.
현재 G마켓·11번가 등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닭 캐릭터 상품 판매 이벤트를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닭 인형을 검색해봐도 닭띠 해를 기념하는 인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원숭이의 해'인 지난해 원숭이 캐릭터 상품이 2015년 12월부터 불티나게 팔린 것과 비교하면 닭의 처지에서는 서운할 법하다.
지난달 1일부터 28일까지 11번가의 닭 관련 캐릭터 문구·팬시류(저금통·양초 등)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39% 상승한 것에 그쳤다.
반면 2015년 12월 판매된 원숭이 캐릭터 인형은 2014년 12월보다 95%, 원숭이 저금통은 54%, 원숭이 액세서리는 57% 등으로 매출이 증가했다.
11번가 관계자는 "지난해 원숭이 캐릭터는 인형이나 장난감으로 많이 나왔지만, 닭은 주로 생활잡화에 캐릭터로 들어가 있다"며 "상품 전체를 봐도 원숭이가 닭보다 많고, 외모 탓인지 닭 인형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 그래도 찾는 이 있기에 '살계성인(殺鷄成仁)'하는 닭들
서울 용산구에서 2년째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는 전모(36)씨는 1일 요즘 매출이 어떠냐는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많이 줄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강남에서 4년간 치킨집을 운영하다가 건물주의 '갑질'에 못 이겨 한강 이북으로 건너온 전씨는 지긋지긋할 법도 했지만, 닭을 미워하진 않았다.
"경기가 안 좋은 탓이 크죠. 온전히 AI 때문에 매출이 줄었다고만은 할 수 없고요. 정부가 방역 같은 걸 제대로 해야 했던 거 아닌가요."
전씨는 홀에 앉은 손님들이 주문한 닭을 튀겨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자에게 나이를 알려주고도 자신이 닭띠라는 것도 뒤늦게 기억해냈다.
어렸을 때부터 치킨을 좋아했다는 전씨는 "건물주가 되는 게 꿈"이라면서 "열심히 장사해서 치킨집을 세 개 정도 운영해 목표를 달성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엄동설한에 땅에 묻히고 광화문 광장에서 조롱거리가 되는 닭이었지만 전씨에게 만큼은 꿈을 이루게 해줄 고마운 존재였다.
"닭띠라서 그런지 닭에 애정이 있네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전씨는 또 한 마리의 닭을 꺼내 정성스럽게 튀길 준비를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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