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에는 있고 한국 청와대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유머다.
미 상원의원을 지낸 밥 돌은 저서 '위대한 대통령의 위트'에서 역대 대통령의 유머 감각에 순위를 매겼다. 1위는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그에겐 정적 스티븐 더글러스가 있었다. 더글러스는 의회에서 링컨의 정책이 모순투성이라며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링컨이 되받았다. "여러분에게 선택을 맡기겠습니다. 만일 저에게 또 다른 얼굴이 있다면 지금 이 얼굴(링컨은 추남이었다)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폭소가 터졌다. 훗날 더글러스는 "(링컨의 농담이) 등을 후려치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유머 감각도 뒤지지 않았다. 1984년 재선에 도전할 당시 레이건은 73세였다. 56세의 민주당 월터 먼데일 후보가 TV토론에서 나이를 걸고넘어졌다. "대통령의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먼데일),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을 생각이 없습니다."(레이건), "그게 무슨 말입니까?"(먼데일), "나는 당신이 너무 젊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레이건) 시청자들이 박장대소했다. 레이건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표차로 먼데일 후보를 눌렀다.
이렇듯 유머는 독설을 압도한다. 특히 대통령의 유머야말로 국민과의 거리감을 없애는 최고의 덕목이다. 독설과 선동에 능한 외강내유형 정치인은 유머와 위트로 무장한 외유내강형 지도자를 이길 수 없다. 지난 10월 미국 ABC 방송은 대통령의 필수 자질로 '유머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74%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유머 감각 역시 남다르다. 그는 재임 기간 오락성 토크쇼에만 20회 이상 출연했다. 시사 월간 애틀랜틱은 그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뛰어난 코미디언"이라고 치켜세웠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 대통령이라는 압박감 속에서도 늘 촌철살인의 유머를 아끼지 않았던 그는 변함없는 인기를 유지하며 레임덕 없는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정치판에는 유머가 없다. 국민을 달래고 유머로 정적을 압도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다. 그저 막말과 독설, 선동만 가득하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던 이정희 후보가 박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라는 주장은 곱씹어 볼만한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원칙'을 강조해 오던 박 대통령이 썰렁하다는 것은 새삼 되새길 필요도 없다. 문제는 앞으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나 국회의원들이 박 대통령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 혁명밖에 없다"고 한다. 여차하면 국민이 들고일어나야 한다는 선동이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국회 답변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촛불에 타 죽고 싶으냐"는 막말을 내뱉었다. 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사드 배치 중단 등을 요구하며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잘하실 필요 없다"고도 했다. 대통령 권한대행더러 '판단도 하지 말고 잘하지도 말라'면 이 나라는 어찌하라는 말인지 알 수 없다.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옳은 정치다. 국민을 자극해서 표를 얻고자 하는 것은 선동일 뿐이다. 선동에 의해 흥한 나라는 찾기 어렵다.
정치인의 잘 나온 유머는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지금 우리 정치판에서 부족한 것은 정곡을 찌르는 유머다. 탄핵 정국을 슬기로 녹여낼 지도자다. 혹자는 막말 퍼레이드를 벌였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을 위안 삼을지 모르지만 틀렸다. 승자는 트럼프지만 표를 더 얻은 쪽은 클린턴이다. 우리나라였다면 대권을 거머쥔 것은 트럼프가 아닌 클린턴이 된다. 둘 다 유머 감각이 모자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나마 나은 평가를 받은 쪽은 클린턴이었다. 답답한 정국에 국민 마음을 달래줄 유머는 '예스'고, 끓는 민심에 기름을 붓는 독설이나 막말은 '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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