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서 울었다. 더위가 내 집을 부순 것도 아니고, 더위가 내 밥벌이를 망친 것도 아닌데, 더워서 울었다. 오로지 덥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럽게 울다니,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2012년 초가을에 내려와 멋모르고 건너뛰었다가, 이듬해 5월부터 맞이하게 된 대구의 여름은 그만큼 혹독했다. 나는 한참 동안 진심으로 후회했다. '괜히 내려왔어!'라고.
하지만 그 더위만 제외하면 대구의 날씨는 대체적으로 밋밋하기 그지없다. 비는 드물고 천둥은 멀리 있으며 벼락은 흐릿하다. 그나마 최근 들어 흰 눈이 좀 무거워졌다고들 하는데, 그게 무거운 거라면 경기도에서 난 벌써 깔려 죽었다. 격동적인 날씨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날씨로 인한 자극이 약하다는 것은 재해에서 비켜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겠다. 실제로 대구가 천재지변이나 자연재해로 고생했다는 소식은 웬만해선 듣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사람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많은 것은? 한마디로 대구는 자연에서 멀어진 대신 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워진 도시로 보인다. 밖을 경계할 일이 없으면 모든 시선과 관심이 안으로 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말이다. 하여 대구가 뉴스나 검색어에 오르내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대구 사람들이 서로에게 품고 있는 냉정한 치열함이 버거워진다.
그런 대구에 살기 시작한 지 이제 4년하고도 넉 달째다. 그리고 난 여전히 대구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다. 발목을 잡아주는 것이 없으니 당연히 힘도 없어서, 별거 아닌 것 같은 바람에도 사정없이 휘청거린다.
프랑스 작가 장 폴 뒤부아의 책 '프랑스적인 삶'에 보면 나무에 대한 서사가 퍽 구체적으로 읊어져 있다.
'첫 바람에 넘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낙관적인 나무들이 있었다. 척박한 땅에서 힘겹게 자라는데 익숙한 근엄한 나무들도 있었다. 죽은 자의 왕국인 땅속 깊이까지 뿌리를 내린 견고한 성처럼 흔들리지 않는 나무도 있었다. 기름진 땅의 산물인 풍족한 나무는 초록빛으로 넘쳐났고 그 풍요한 모피를 펼쳤다. 이 세상에는 아주 드물지만, 날씬한 몸매에 항상 꼭대기가 하늘을 향해 있는 몽상가 같은 나무도 있었다. 오래된 의혹으로 둥글게 감고 있는 옹이가 많은 나무, 뒤틀린 나무, 위태로운 나무가 있었다. 알파벳 소문자 'i'처럼 곧고 조금은 건방지고 묘하게 거만한 귀족적인 나무도 있었다. 나뭇가지로 아낌없이 그늘을 만들어주는 너그러운 나무도 있었다. 쉬지 않고 땅을 붙들어 놓고 일하느라 바쁜, 줄지어 선 옹색한 나무도 있었다.'
과연 나는 어떤 나무인 건가. 나무라고 할 수는 있는 건가. 아, 뿌리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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