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문학노트] 고정희의 '화육제 별사'①

입력 2016-12-24 04:55:01

우리는 숨죽여 울었다

아아 친구여 언제나 그랬지/ 성만찬의 술과 빵을 씹으며/ 우리가 무섭게 전율하는 이유는/ 예수의 化肉이거나 영생 때문이 아니라/ 잡초보다 무성한 '안락'에 대한 갈망/ '행복'을 그리는 습관 때문이었지/ 무사함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지/ 그리고 우리는 숨죽여 울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자유롭고 싶었다/ 우리를 길들이는 고통에 대하여/ 속수무책인 싸움에 대하여/ 그리고 '사회정의'라는 닳아빠진 구호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맹목적인 해결주의, 또는/ 늙어빠진 보수주의에 대해서도/ 우리는 참으로 자유롭고 싶었지/ 오 우리는 자유 하고 싶었지/ 그러나 우리에게 출구는 없었다/ 우리 자신만이 곧 출구임을 알았을 때/ 우리는 이제 길이 되기로 했다(고정희, '화육제 별사' 부분)

1980년대 어느 날 겨울, 교문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공룡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도서관 옆 민주광장에는 그보다 몇 배가 많은 대학생들이 '타는 목마름으로'를 부르고 있었다. 눈물 나는 최루탄의 잔내음이 여전히 교정에 머물고 있었다. 서편으로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고 잎을 잃어버린 겨울나무 사이로 미처 녹지 못한 잔설(殘雪)이 머물고 있었다. 저무는 햇살이 고즈넉하게 도서관에 진열된 책들을 비추고 있었다. 전혀 다른 풍경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역사를 만들어가는 시대의 풍경이 쓸쓸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읽다가 탁자 위에 놓아둔 무크지 '시와 반시'. 우연히 넘긴 그 책에서 고정희의 '화육제 별사'라는 시를 운명처럼 만났다. 10쪽에 가까운 장시였다. 아픈 시대와 뜨거운 감성이 만나 초혼가처럼 슬픈 언어로 가슴에 들어왔다. 그날 이후 고정희는 돌아가고 싶은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모든 것이 감격스럽고 열정적이던 시대, 뜨겁게 내 영혼과 몸을 달구던 시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아름다운 대서사의 시대, 루카치의 말처럼 하늘의 별만을 바라보고 걸어가도 행복하던 시대, 그 긴 시를 들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내 몸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는 슬픔, 그러면서도 다시 달구어지는 영혼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건초덤불처럼 가죽만 남으신 채/ 논두렁에 엎드리신 칠순의 아버지/ 한 장의 전보에도 새하얗게 질리시는/ 육순의 어머니가 걸어오고 계셨어/ 애닯게 애닯게 손을 젓고 계셨어' 하는 부분에서는 긴 시간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공간의 풍경은 바뀌었지만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잡초보다 무성한 안락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더욱 강해졌고, '무사함에 대한 그리움'은 일상이 되었다. '사회정의라는 닳아빠진 구호'는 여전히 정권의 수단이 되었고, '출구'를 찾지 못한 '속수무책인 싸움'만 지속되었다. 다시 고정희를 읽을 수밖에 없는 슬픔이 나를 지배했다. 단지 우리는 자유롭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하는' 말이 동일한 시대, 길은 어느 누구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었고, 결국 내 스스로가 길이 되어 슬픔 안으로 걸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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