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eat는 집] '물곰' 아침 속풀이에 죽입니다!

입력 2016-12-22 04:55:02

탕을 먹으면 시원한 해장용… 회로 먹으면 터벅살 기막혀…

"미꾸라지처럼 살살 빠져나가기만 하고…." 최근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자주 들었던 말이다. 날카로운 질문, 송곳 질책으로 몰아가도 기름장어처럼 빠져나가는 증인들의 처세에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는 더 높아진다.

이제 음식 얘기로 넘어가 보자.

미꾸라지를 감싸고 있는 점막인 콘드로이친, 뮤신(mucin)은 관절과 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특히 콜라겐 성분은 피부에 탄력을 주는 유익한 물질로 알려져 있다. 미끌거리는 어류 하면 추어, 장어를 떠올리지만 물곰, 물메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오히려 표면적이 넓기 때문에 양적(量的)으로 더 충실하다.

물곰(꼼치, 곰치)은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미역어'(迷役魚)로 표기돼 있다. '역할'용도를 알 수 없는 생선'이란 뜻이니 아마 당시에도 사료와 생선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본론에 들어가서는 '맛이 순하고 술병에 좋다'고 표기하고 있어 다소 애매하다.

이런 혼란에 대해 경산 '영덕해산물'의 박동걸 씨가 나서 명확히 정리를 해주었다. 냉동시설이 없었던 옛날엔 조업 중 곰치가 쉽게 변질돼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수조, 저온시설이 갖추어진 지금은 귀어(貴魚)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 즉 보관성 때문에 용도에 혼선이 있었을 뿐 생선 자체의 맛과 영양에는 이견이 없었다는 것이다.

원래 겨울철 바닷가 사람들의 구황(救荒) 용도로 쓰였던 물곰이 지금은 속풀이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콧물을 마시는 느낌'이라 하여 주저하는 사람도 있지만 마니아들에겐 '신이 내린 음식'으로 분류된다. 특히 미끌미끌한 껍질, 흐물흐물한 속살이 목젖을 넘어가는 느낌은 선계(仙界)를 넘나드는 맛이라는 극찬도 있다.

그나저나 특검이 시작되면서 국민들은 기름쟁이들의 처세에 또 혈압이 올라갈 것 같다. 민심의 분노에 훨씬 못 미치는 그들의 희미한 도덕성 때문이다. 증인들의 번들번들한 처세에 화가 나 한잔 들이켰다면 얼얼한 속은 물곰으로 풀어보자. 기름쟁이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는 미끌미끌 물곰탕으로 푸는 게 제격이 아닐는지.

◆복현오거리 '백년옥'

#10월부터 1월까지 3개월만 남해안 활어 물곰 취급

대구에서 활어 물곰탕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복현동으로 차를 몰았다. 점포 앞 수족관에는 어른 팔뚝 만한 물메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백년옥 박강오(54) 씨가 물곰요리를 시작한 건 13년 전. 어느 날 시 한 소절을 듣고부터. 조선후기 한 문장가의 속풀이 음식에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그중 물곰탕이 가장 와 닿았다는 것. 당시 사업에 실패하고 식당을 구상하면서 박 씨는 물곰탕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활어만 고집하다 보니 10월에서 1월까지 3개월만 물곰을 취급한다. 주 1, 2회 동'남해안에 직접 가서 활어를 경매받아 온다. 박 씨가 들려주는 냉동과 활어탕의 구별법. '숟가락으로만 먹을 수 있다면 활어, 그렇지 않다면 냉동.' 생물을 탕으로 끓여내면 육질이 부드럽게 퍼지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집을 수 없다는 것. 무, 콩나물, 파와 싱싱한 물곰으로만 국물을 낸다. 주문과 동시에 물곰 해체를 시작하기 때문에 예약은 필수.

*대표메뉴: 물곰탕(지리) 1만5천원

*주소: 대구 북구 검단로 8-8

*전화: 053)381-1010

◆경산 계양동 '영덕해산물'

#육수가 다른 맑은 탕, 전국 마니아들이 몰려들 정도

대구'경산권에서 생물 물곰탕을 연중 먹을 수 있는 곳. 물곰탕의 재료는 물메기와 물곰이 주로 쓰이는데 마니아들은 가격이 싸고 대량으로 잡히는 물메기보다 비싸고 희소성이 있는 물곰탕에 더 후한 점수를 준다. 포항 출신인 박동걸 씨가 경산 계양동에 해물식당을 낸 것은 1997년, 내년으로 만 20년을 맞는다. 지역에서 물곰탕 역사를 논할 때 원조급 경력을 자랑하지만 박 씨의 또 하나 긍지는 '지리'를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점. 노하우, 육수 비법이 쌓여 맑은 탕만큼은 전국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육수에 물곰과 매생이를 넣고 끓여 내는데 그 깊고 시원한 국물 맛에 전국의 마니아들이 몰려든다. 언론에 몇 차례 소개된 덕에 서울은 물론 해산물 집산지인 부산서도 전화가 온다. 경산시청, 경찰서, 주변 대학 교직원들이 손님의 80%를 차지한다. 블로거들 사이 '맑은 국물과 가자미식해를 곁들여 먹는 맛은 전국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 작황에 따라 위판가가 달라 2만~3만원 사이 가격이 책정된다.

*대표메뉴: 물곰탕(시세 대로)

*주소: 경산시 계양동 원효로 22길 6

*전화: 053)802-0340

◆대구 서구청 뒤 '서구회물곰탕'

#동해서 잡은 쫀득한 물곰, 여름에도 맛볼 수 있어요

'물곰탕은 겨울 한철 음식'이라는 등식을 깬 집이다. 공무원 단골이 특히 많아 냄비엔 연중 물곰탕이 끓고 매일 동대구위판장에서 물곰. 물메기가 들어온다. 여름에 잡힌 곰치는 살이 물러 식용으로 부적합하다는 건 상식. 그러나 주인 공인숙 씨는 "동해에서 잡힌 물곰은 육질이 쫀득하다"고 말한다. 동해 먼바다엔 항상 한류(寒流)가 흘러 육질의 탄력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사철 물곰, 물메기 값이 일정하지 않아 품귀 때는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일정한 가격(8천원)을 지키며 14년째 물곰탕을 내고 있다. 손님의 80%가 단골. 주변에 서구청, 서부서, KT, 폴리텍 직원들이 점심, 저녁으로 질서정연하게 입장했다 빠지기를 반복한다. 취재 때 만난 한 공무원은 "처음엔 속풀이로 이곳저곳 다녔지만 지금은 해장을 물곰탕으로 공식화했다"고 말한다. 서구청 뒤편 서부도서관 인근에 있다.

*대표메뉴: 물곰탕 8천원

*주소: 대구 서구 국채보상로 49길 19

*전화: 053)564-3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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