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변기 공주

입력 2016-12-19 04:55:06

프랑스 대혁명기 파리의 역사와 생활상을 확인하려면 파리 4구 세비녜가에 있는 '뮈제 카흐나바레'가 제격이다. 16, 17세기에 각각 지어진 카흐나바레 저택과 페레티에 저택을 개조한 이 박물관은 당시 회화와 조각, 가구, 각종 기록물과 자료,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페레티에 저택 3층에는 혁명 무렵 파리의 거리를 재현해 흥미를 더한다.

관람객 시선을 끄는 전시물 중 하나가 루이 16세의 풍자화다. 국외로 도주하던 국왕 일가가 국경마을 바렌에서 발각돼 파리로 연행되는 모습을 희화화한 것이다. 건초나 가축을 운반하는 나무바퀴 마차에 실려 끌려가는 왕족의 모습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당시 파리 시민은 국왕의 탈출을 배신행위라며 분노했고 그 누구도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고 기록은 전한다.

시민들이 왕을 단두대로 보낸 이유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국외 도주가 가장 결정적이다. 혁명 직후 많은 귀족이 국외로 도피했고 당시 여건으로 볼 때 탈출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왜 탈출에 실패했을까.

프랑스 혁명사 연구자들은 그 원인을 앙투아네트의 '공주병'에서 찾는다. 측근이 작고 빠른 마차에다 휴대품도 최소한으로 줄일 것을 권고했지만 앙투아네트는 화장도구와 식기류, 가구까지 챙기고 마차에 변기도 두 개나 설치하도록 명령했다. 마차는 거대해졌고 눈에 쉽게 띄었다. '적자 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오스트리아 공주 앙투아네트의 사치는 유명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져 국민이 혀를 차고 있다. 겨우 몇십 분 머무르는 행사장 대기실에 '대통령 전용 화장실'을 만든다고 수도까지 끌어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2014년 12월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10개국 정상회의 때 일화다. 대통령의 인천 방문 때도 시장실 변기를 뜯고 새 변기로 교체했다는 전직 인천시장의 폭로도 나왔다.

한 일간지 특파원은 2013년 11월 박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 때 현지 5성급 호텔에서도 드레스룸 설치와 조명 교체 등 유별난 일이 있었다고 칼럼에 밝혔다. 박 대통령의 이런 행태를 '변기 공주' '변기 창조'라고 조롱하는 누리꾼의 심정이 대혁명 때 파리 시민의 그것과 다를까. 상식을 벗어난 품행과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박 대통령에게서 직책에 관한 정확한 이해나 의무감, 바른 국정과 소통을 찾는다는 게 애당초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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