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는 어떻게 침대와 세상을 정복했는가/브룩 보렐 지음/김정혜 옮김/위즈덤하우스 펴냄
25만 년 동안 인류를 따라다니며 피를 빨아온 흡혈 곤충 빈대와 이를 통해 보는 인류문화사다. 인류를 먹이로 선택한 빈대의 습성과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한편, 인류가 빈대를 퇴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빈대가 인류의 문화와 역사에 끼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빌붙어 사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빈대 붙어 산다'고 말한다. 그만큼 빈대는 인류에게 혐오스러운 벌레로 인식된다. 실제로 빈대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밤에만 활동하며, 침실에 숨어 인간의 피를 빨아 먹는다. 밤에 자는데 무엇인가 물어 붉은 돌기가 생기고 가렵다면 십중팔구 빈대 짓이다. 좀 무덤덤한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유독 자주 물리는 사람은 신경쇠약에 시달리기도 한다. 옷에서 떨어진 작은 실타래 뭉치만 봐도 빈대로 오인하기도 한다.
빈대는 성경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힌 곤충이다. 다양한 예술작품과 문헌에서 빈대는 인류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존재였다. 악취를 풍기고, 성병을 옮기고, 악마를 따르는 괴물로 묘사되기도 했다.
이 혐오스러운 곤충을 쫓아내기 위해 인류를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이집트인들은 빈대를 쫓기 위해 주문을 외웠고, 그리스인들은 죽은 동물의 발을 미끼로 제공했고, 발칸인들은 바닥에 말린 콩잎을 깔았다. 어떤 이들은 빈대가 몸에 달라붙는 것을 막기 위해 몸에 치명적인 수은을 분사하기도 했다.
빈대를 각종 치료제로 사용한 사람들도 있었다. 중국인은 피부 연고제로, 로마인은 귓병 치료제로, 미국인은 변비와 기침, 치질 치료에 사용했다. 빈대는 인류가 기피해온 해충인 동시에 인류의 생활을 변화시킨 곤충이었던 셈이다.
인류에게 침실은 휴식의 공간이자 매우 사적인 공간이며 안전해야 할 공간이다. 빈대는 바로 이 공간에 서식하며 인류를 괴롭힌다. 인류가 침실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을 여지없이 깨부수는 원흉인 것이다.
사실 동굴에 살던 빈대를 주택으로 끌어들인 것은 인간이었다. 전 세계로 빈대를 퍼뜨린 것도 인간이었다. 빈대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독특한 특징에 적응해 진화했고, 인류가 여행하고 교류하는 내내 인류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번성했다.
20세기 화학 살충제를 발명하고 융단 폭격하듯 살충제를 분사해 빈대를 거의 멸종 직전까지 몰아붙였지만, 박멸하지는 못했고 결국 저항력을 가진 새로운 빈대종을 탄생시킨 것도 인간이다. 요컨대 우리는 빈대를 싫어하고, 혐오하지만 역설적으로 빈대를 창궐하게 한 조력자였던 것이다.
빈대는 사람들 사이에 불신과 혐오를 낳게 한 곤충이기도 하다. 빈대에 많이 시달린 사람들은 이 곤충을 자신에게 옮긴 것으로 의심되는 자들을 향해 비난과 혐오를 표출했다. 빈대의 진원지로 추정되는 난민촌, 노숙자 쉼터, 공공주택 등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거주지를 의심과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다.
지은이는 "20세기 중반 화학살충제의 대량보급으로 빈대가 어느 순간 깜짝 사라졌다가 반세기가 흐른 뒤 다시 나타났다. 다시 나타났을 때 빈대는 살충제에 저항성을 갖고 있었다. 이제 빈대는 인간의 지위고하, 남녀노소, 인종을 가리지 않고 피를 빨아먹도록 진화해 있었다. 요컨대 빈대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했다" 고 말한다.
'빈대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만,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빈대 확산의 원인을 찾는 사람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지역의 사람, 인구통계학적으로 다른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빈대 확산의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인간에게는 '우리 대(對) 그들, 익숙한 것 대(對) 이질적인 것'을 구분하는 타고난 성향이 있다는 것을 빈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 브룩 보렐은 미국의 과학 전문 집필가이자 프리랜서 과학기자며 잡지 편집자다. 과학과 기술의 이용이 우리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408쪽, 1만8천원.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