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 쏟아부은 가게, 나무금고서 돈뭉치 발견…5만원 160장 형체 남아
지난 8일 대구 서문시장 4지구 화재 현장을 찾은 상인 김모(54) 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매장 구석 나무금고 깊은 곳에 넣어둔 현금봉투가 일부 불에 타긴 했지만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5만원권 160장(800만원 상당)이 고스란히 있었던 것이다. 불에 탄 지폐도 금액만 확인할 수 있다면 교환할 수 있다는 주변 상인들의 얘기에 힘이 났다.
하지만 다음 날 김 씨는 절망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재가 된 돈뭉치가 조금이라도 날아갈까 전전긍긍하며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 가져갔지만 훼손이 심해 교환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 씨는 "지폐의 색도 일부 남아있고 액수까지 적혀 있는데 교환해줄 수 없다는 말이 이해가 안된다"며 "차라리 모두 타버렸으면 포기라도 할 텐데 눈앞에 전 재산을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 8월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며 진 빚을 갚느라 가족이 살던 작은 아파트를 팔았다. 현재 남편은 돈을 벌겠다고 타지에 가 연락이 되지 않고 김 씨는 언니 집에 얹혀사는 신세다. 김 씨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남은 돈을 서문시장에서 월세가 가장 싼 4지구 3층에 쏟아붓고 옷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화마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
김 씨는 "화재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을 당시에는 아직 매장까지 불이 번지지 않은 상태였다. 전 재산이 저기 있어 '저 돈 없으면 우리 가족은 죽는다. 금방 갖고 나올 테니 들어가게 해달라'며 소방관에게 애원했지만 제지당했다"고 했다. 이어 "결국 마지막 희망이 불에 타는 것을 뜬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유실된 줄 알았던 돈뭉치가 남아있어 잠시 희망을 품었지만 그마저도 사라져 버렸다"며 한탄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5만원권임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김 씨의 사정이 너무 안타깝지만 교환 조건을 충족하기에는 상태가 심각하다"며 "멀쩡한 부분이 75% 이상이면 전액, 40% 이상이면 반액을 교환하고 뭉칫돈의 경우 몇 장인지 셀 수 있을 정도여야 교환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씨가 가져온 돈은 멀쩡한 부분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 우리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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