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첫 대통령 이승만, 헌법 어겨 첫 탄핵당해…『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

입력 2016-12-10 04:55:12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 한시준 지음/ 역사공간 펴냄

우리는 '태정태세문단세…'라며 조선 역대 왕의 이름을 곧잘 외운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이름은 더 잘 외울 것이다. 대통령을 선출한 역사는 한 세기도 안 되는 데다 두 번 또는 세 번 심지어는 다섯 번이나 연속으로 대통령을 맡은 사람도 있어서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태조의 정도전, 세종의 황희, 선조의 이순신 등 지도자와 함께 활약했던 지도자급 인물들의 이름도 잘 기억한다. 아마도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들의 생각 및 행적이 '지금의 나'라는 존재와 우리 사회를 있게 했다고 믿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그리고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사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 및 지도자급 인물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게 사실이다. 물론 이승만과 김구는 잘 알 것이다. 그럼 나머지 인물들은? 하나 알려주면 안창호가 있다. 아하. 그런데 그 외의 또 다른 인물들은? 역사책에서 얼핏 본 것은 같은데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 책을 읽기 전 기자가 그랬다.

이 책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 및 지도자급 인물들을 다룬 책이다. 짧은 역사에도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 여럿이다.

임시정부의 시작점은 1919년 3'1독립선언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부정하는 독립국 선언의 의미를 담은 3'1독립선언을 바탕으로 연해주에는 대한국민의회, 상해에는 대한민국 임정, 국내에는 한성정부가 수립됐다. 세 정부는 한성정부를 정통으로 인정하며 명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하는 데 합의했다.

이때 활약한 인물이 홍진이다. 홍진은 1919년 4월 한성정부 수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때 상해에도 이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다. 수백 년 전 조선 조정 같았으면(붕당 정치), 또는 요즘 우리 상황 같으면 저마다 정통성을 주장하며 갈라져 싸웠을지도. 하지만 임정 사람들은 안 그랬다. 홍진은 한성정부를 '품에 안고' 상해로 갔다.

이즈음 안창호는 초기 임시정부의 체계를 다진 인물이다. 안창호의 노력을 중심으로 임정은 청사를 마련하고, 조직을 갖췄으며, 헌법도 제정했다.

이어 책은 임시정부의 지도자인 행정 수반들에 대해 얘기한다. 임정은 역사는 짧지만 행정 수반의 명칭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1919년 수립 당시 '국무총리' ▷같은 해 9월 '대통령' ▷1925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국무령' ▷1927년 집단지도체제 '국무위원회' ▷1940년 '주석'으로 변화했다.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첫 대통령이 되기 전에 먼저 또 하나의 첫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쓴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은 '최초' 기록을 하나 더 갖고 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탄핵'을 최초로 당한 대통령이다. 최초로 '하야'(대한민국 정부 초대 대통령 때)한 기록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되고도 미국에서 활동했다. 그러자 임정에 혼란이 발생했다. '대통령은 임시의정원의 승낙 없이 국경을 마음대로 벗어나지 못한다'는 임정 헌법을 어긴 것도 문제가 됐다. 이승만은 1920년 12월에야 상해에 들어왔는데, 국무위원들과의 불화를 이유로 6개월 만인 1921년 5월 하와이로 떠나버렸다. 더구나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동지회라는 조직을 따로 만들어 활동하며 임정은 방치했다. 결국 임시의정원은 1925년 3월 이승만 대통령을 탄핵했다. 요즘 시국에 눈길을 끄는 역사의 한 페이지다. 책임감 없는 대통령은 탄핵당하는 역사를 반복하는 걸까.

임시정부 역사에서 이승만은 오점이었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달랐다. 이승만이 탄핵당한 뒤 임정 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인물은 임정 구성원 중 원로였던 박은식이다. 임정의 혼란을 수습하려면 모두가 따를 수 있는 원로가 필요했고, 박은식이 적임자였던 것이다.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박은식의 혜안을 하나 엿볼 수 있다. 혼란을 수습하고자 박은식은 임정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제를 국무령제로 바꿨다. 대통령은 권리만 갖는 게 아니라 의무도 다하는 직책임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원래는 국민의 종, 나라의 심부름꾼을 뜻하는 국복(國僕)을 최고 행정 수반의 명칭으로 쓰려다 이의가 제기돼 국무령으로 한 것이다. 역시 요즘 대한민국 현실에서 되새겨보게 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이어 책에서는 민족 대결합을 강조한 국무령 홍진, 임시정부를 독립운동 최고기구로도 발전시킨 주석 김구를 다룬다.

임시정부를 자세히 파악하려면 임정의 이론가들도 살펴봐야 한다. 조소앙과 신익희다. 조소앙은 다양한 정치 이념을 가진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는 문제와 광복 후 어떤 민족국가를 건설할지에 대해 고민했고, 그 답으로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으로 민족 대다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균등사회를 제시했다. 바로 '삼균주의'다. 신익희는 헌법의 기초를 주도해 만들었고,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문구를 넣는 데 기여했다. 이는 지금의 대한민국 헌법으로 연결된다.

책은 임시정부의 국군인 한국광복군을 지휘한 두 인물 이청천(지청천)과 황학수도 소개한다. 이청천은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으로 참전했다. 그러나 3'1운동을 보고 탈출해 독립운동에 나섰고, 1940년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이 됐다. 황학수는 1898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한 것을 시작으로 1945년 광복을 맞을 때까지 올곧게 하나의 나라만을 위해 싸운 군인이라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일본군 장교였다가 남로당 군책이었다가 국군이 돼 쿠데타를 일으키기까지, 개인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기회만 노린 군인 출신이라는 평가를 받는 어느 전직 대통령과 비교된다.

414쪽, 1만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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