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경북대 저력을 믿는다

입력 2016-12-09 04:55:09

국정 농단의 끝은 탄핵 정국으로 치달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들은 어디 하나 손을 안 댄 곳이 없다. 대한민국이 그들 손에 힘없이 흔들렸고 국민은 무력감을 넘어 치솟는 분노에 '촛불'을 들었다. 대구경북 최고 상아탑인 경북대 또한 그들의 '마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 10월 21일 경북대 18대 총장에 김상동 수학과 교수가 임명됐다. 이로써 사상 초유의 2년 2개월간 총장 부재 사태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민주적 절차로 뽑은 1순위 후보인 김사열 교수(생명과학부)가 총장에 탈락하고 2순위 후보가 총장에 임명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경북대의 자존심은 짓밟혔다.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 자율성도 온데간데없게 됐다. 지난 2014년에도 똑같은 후보들을 교육부에 올렸는데도 아무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재추천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에도 경북대는 오랫동안 혼란을 겪었다. 결과적으로 시간만 끌고 경북대 구성원들에게 상처만 남긴 꼴이다. 경북대 구성원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모든 배경에 청와대의 '몽니'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국정 농단의 핵심 부역자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김사열 교수의 총장 임명을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것이 후문이다. 이 부분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도 다뤄질 예정이다.

경북대는 지금까지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일각에서 현 총장 임명과 관련해 강한 반발을 하고 있어서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시국과 맞물리면서 그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상당 기간 총장 부재 사태로 인해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대학 정상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대학 자율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캠퍼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경북대 구성원 모두가 이 사태의 피해자다. 아집을 버리지 못하고 순리를 거역한 결정을 한 현 정부가 오롯이 가해자인데도 그들은 전혀 책임지지 않고 피해자끼리 괴로워하게 만들었다. 현 정부의 만행이 가혹하기만 하다. 이와 관련, 경북대 교수회 소속 한 교수는 "무엇이 정말 올바른 길인지 모르겠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이야기해달라"며 하소연했다. 그만큼 경북대에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고심하고 또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과정에서 경북대의 힘을 분명히 느꼈다. 이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거라는 희망도 보았다. 캠퍼스 곳곳에 걸려 있는 2순위 총장 선임에 대한 항의성 현수막이 그렇고 대학본부 로비에서 40여 일째 단식 농성을 진행해왔던 교수들을 보면서 그렇다. 최근 김무성 국회의원(새누리당)이 강연을 위해 경북대를 찾았을 때 '물러가라'고 외치는 학생들이 그렇다. 또한 '민주주의는 죽었다'며 민주주의 장례식을 치르고 대학 자율성을 되찾자고 촉구하는 학생들이 그렇다. 얼핏 잡음과 갈등으로 보이는 이런 모습은 경북대가 대구경북 지성의 산실임과 대학의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이면이기도 하다. 경북대 한 교수는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대학이기에 가능하고 그것이 대학의 특권이다"고 했다.

경북대 교수회가 지난 1일 임시평의회를 열어 대학 정상화를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특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총 9인의 교수로 구성되는 특위를 통해 대학본부 측과 현 체제에 반발하는 교수들을 끌어들이고 구성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겠다는 복안이다. 앞으로 2순위 총장 임명 과정에서의 평가나 안정화 방안, 총장 직선제 논의 등 대학 정상화를 위한 전반적인 사항을 논의할 예정이다. 특위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대의를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정부에 의한 비정상화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다행히 단식 농성을 했던 교수들도 특위 구성으로 농성을 끝냈다. 어렵게 꾸려진 만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묘안이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 경북대의 저력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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