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교육부의 영혼

입력 2016-11-28 04:55:06

"그래서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2010년 2월 10일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의 추궁에 당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고용을 늘리는 중소기업에 세금을 깎아주는 고용장려 세제가 세수만 축내고 효과는 없다며 반대했다가 왜 갑자기 찬성으로 돌아섰느냐는 힐난에 대한 변명이었다. 취임사에서 "재정부 공무원은 영혼을 가져도 좋다"고 한 그로서는 이 대답이 스스로도 쑥스러웠을 것이다.

근대적 관료제의 기능과 특징을 해부한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관료제를 "가장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조직의 형태"라고 옹호했다. 기존에 있던 귀족 중심적(혹은 엽관제적) 조직과는 다르게 높은 효율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가져왔기에 정치와 행정 간의 거리를 둘 수 있음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영혼의 부재' 때문이다. 이를 표현한 막스 베버의 유명한 언명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나온다. "관료제는 개인 감정을 갖지 않는다. 관료의 권위가 영혼 없는 전문가와 감정 없는 쾌락주의자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스 베버는 이런 '영혼 없음'이 관료제 본연의 장점을 질식시키고, '합리성'이란 미명 하에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을 구속함으로써 관료제는 껍데기만 남게 되는 위험성도 아울러 경고했다. 베버는 이를 '쇠우리'(iron cage)라고 했다. 뉴욕 시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미국의 행정학자 랄프 험멜은 저서 '관료제 경험'에서 관료제의 이런 위험성을 더 분명하게 지적했다. "공무원은 사람이 아니라 사례(case)를 다루고, 다른 인간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효율에만 집중한다."

교육부가 박근혜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해온 단일 국정 역사교과서 정책을 사실상 포기했다.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은 28일 예정대로 공개하되, 국정교과서와 검정 교과서들 가운데 학교에서 선택하도록 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지금 국정화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면 내용은 보지도 않고 현장에서 외면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았지만 '국정화 포기'의 이유가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도덕적 권위 상실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시류의 형세에 민감한 관료 특유의 감각이 빛난다. 특히 "내용은 보지도 않고 현장에서 외면당할 것"이란 판단은 압권이다. 관료의 '영혼 없음'을 재확인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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