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분식(粉飾) 자서전

입력 2016-11-26 04:55:05

'인구론'으로 유명한 영국 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구순구개열을 앓았다. 언청이는 그의 집안 내림이었다. 당시 맬서스와 같은 명사의 경우 초상화는 보편적인 일이었다. 고전경제학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영국 왕립학회 회원, 성공회 성직자 신분이었음을 감안할 때 초상화 제작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맬서스는 주저했다. 신체 결함이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흉도 아니고 치료도 어렵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치료를 받고 난 뒤에야 초상화를 남겼다. 죽기 1년 전인 1833년이다.

조선시대 자화상의 으뜸으로 꼽는 선비 화가 윤두서 초상화에는 얼굴과 두건 일부만 있다. 몸도 귀도 없고 신분을 드러내는 의복도 보이지 않는다. 강렬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 세밀한 수염 등 극사실의 초상화에 그린 이의 표현의 정신까지 엿보인다. 초상화로는 드물게 국보가 된 이유다.

맬서스의 일화나 윤두서 초상화처럼 옛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물에 어떤 두려움과 마음가짐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림에서 얻는 정보는 단편적이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특히 자기 삶에 대한 기록은 글쓴이에 대한 평가나 영향력 등 파급의 정도가 더 직접적이다. 주요 인물의 자서전과 회고록은 시대 기록이자 사실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등 여러 저작물이 수난을 겪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여파가 책에까지 번진 것이다. 한때 국내외에서 베스트셀러로 각광받던 책들이다. 일부 독자는 이를 내다버리거나 중고서점에 헐값에 내놓았다. '하야는 나를 단련시키고 순실은 나를 움직인다'는 패러디 댓글이 달리고 연설문도 못 쓰는 대통령의 자서전을 누가 믿겠느냐며 조롱한다.

정치인의 자서전에서 분식(粉飾)은 일상이다. 실제보다 좋게 보이려는 거짓 꾸밈이 많다는 말이다. '백범일지'나 '조병옥 회고록' 등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특히 요즘 정치인 자서전은 가급적 손에 쥐지 않는 게 상책이다. 굳이 읽겠다면 분칠을 감안해야 한다. 사실대로 제 손으로 쓴다면 말릴 수 없다. 그러나 애초 정치인들은 자서전을 쓰지 않는 게 가장 좋은 해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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