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세계유산 도시 꿈꾼다] <8> 도산구곡 복합문화유산 가능성

입력 2016-11-24 04:55:05

퇴계 철학 스민 도산구곡, 중국 성리학의 요람과 빼닮아

무이산은 중국 복건성과 강서성에 걸쳐 있는 산이다. 저마다 각기 다른 모습의 36개 봉우리와 99개의 기암, 깊은 계곡이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다워 중국인들에게도 사랑받는 명산이다. 지난 1999년 중국 최초로 유네스코에서 '자연과 문화' 두 부문에 걸쳐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른바 복합유산이다. 특히 우리나라 퇴계 이황 선생 등 많은 조선 유학자들의 학문에 영향을 준 주자학을 완성한 주희 선생(주자)이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던 곳으로 알려졌다.

퇴계 선생은 주자학을 조선 성리학으로 새롭게 완성하면서 주희를 흠모해, 자신이 낙향해 후학을 가르치던 곳에 무이정사를 닮은 '도산서당'을 짓고, 무이구곡을 본떠 도산구곡을 노래했다. 이처럼 안동 도산구곡의 자연환경과 문화 등 많은 부분이 닮은 무이산, 무이구곡을 통해 도산서원과 도산구곡의 복합유산 등재 가능성을 엿본다.

◆ 문화+자연, 두 부문 세계유산 등재, 주희 선생과 무이구곡

"무이구곡(武夷九曲)의 하천 경관은 바위 절벽과 어우러져 특별한 경치를 보인다."

무이구곡에 대한 유네스코 평가다. 무이산에서 주자는 무이정사를 지어 학문하고, 구곡을 벗 삼고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살았다. 무이구곡은 동아시아 성리학의 요람이 됐다. 그 자연'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무이산은 일찍이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됐다.

실제로 찾은 무이구곡은 우리나라 산에서는 보기 어려운 웅장한 절경을 자랑했다. 무이산의 암석들은 붉은색을 띠는 곳이 많은데 이것은 미국 그랜드캐니언과 비슷한 지형인 '단하지형'으로 철과 칼슘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이산은 우롱차의 발원인 명차 '대홍포'의 재배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무이산 곳곳 암석들 사이로 차밭이 빼곡하다. 각 차밭에는 농부 개개인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고 위치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무이산의 기암들은 거북이, 독수리 등 다양한 모양을 자랑하지만 무엇보다 그 규모가 대단하다. 특히 복건성 지역은 중국 내에서도 석재 생산과 가공이 뛰어나기로 유명해 바위를 깎아 만든 돌계단들은 단순한 길을 넘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독특한 것은 이렇게 넓은 지역에도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관리가 철저하다. 무이산을 관리하는 2천여 명의 직원들이 끊임없이 유산 곳곳을 찾아 청소에 나서기 때문이다.

차밭들을 지나쳐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주희 선생의 스승을 모신 사당이 있는 '수렴동'이 나온다. 수렴동은 무이산에서 가장 큰 바위굴이다. 높이는 100여m에 이르는데, 정상이 비스듬히 앞으로 나와있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암벽 위에는 물이 흘러 정상에서 아래로 폭포를 이룬다. 물이 떨어져 생긴 웅덩이에는 용이 산다고 해서 '목룡담'(沐龍潭)이라 한다. 수렴동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는 집 한 채가 있으니 '삼현사'(三賢祠)다.

삼현사는 주자와 그의 스승 유자휘, 사형 유보를 모신 사당이다. 주자는 이곳에서 소년 시절부터 스승에게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무이구곡을 제대로 즐기려면 뗏목 관광은 필수다.

이 때문에 무이산시 세계문화유산관리국에서도 뗏목 체험요금이 입장료에 포함된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뗏목 관광의 시작은 9곡(曲). 8곡을 지나칠 때는 거북바위를 볼 수 있고, 신선의 회랑 같다는 7곡 북랑암, 6곡 선장봉, 5곡 은병봉, 4곡 대장봉 등을 볼 수 있다. 구곡을 따라 펼쳐진 기암들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연상케 하지만 이들 봉우리에는 하나의 전설이 있다.

천상의 옥녀(옥녀봉)가 무이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세상에 내려왔다가 대왕(대왕봉)과 사랑에 빠져 하늘로 돌아가지 않자 옥황상제가 크게 노해 이 둘을 봉우리로 만들고 양쪽이 절대 만나지 못하도록 천유봉으로 떨어져 있게 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뗏목 체험의 끝에는 주자가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무이정사가 들어서 있다. 무이정사 내부에는 주자의 제자 양성 과정을 모형으로 만든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벽에 가장 크게 걸린 글자는 바로 '효'(孝)이다. 그는 생전에 "효의 뜻함을 모르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했을 만큼 효를 도덕의 가장 기본이라고 여겼다.

◆안동 도산, 퇴계 선생과 도산구곡

주자의 도덕정신은 퇴계 선생이 '예안향약' 등에서 언급한 '효'(孝)와 상당 부분 겹친다. 주자가 조선시대 한국에 미친 영향은 넓고 깊다. 퇴계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가운데 칸을 '완락재'(玩樂齋)라 하고 왼쪽 칸을 '암서헌'(巖棲軒)이라 한 것은 주자의 예에 따른 것이다.

그들의 삶 또한 자연을 벗 삼아 학문과 도덕적 정진에 멈춤이 없다는 것에서 많은 곳이 닮아있다. 이 때문에 지난 2011년 한국과 중국의 학자들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자가 머물렀던 무이산 일대의 '무이구곡'과 동방의 주자로 불리며 조선 성리학을 형성했던 퇴계 이황의 삶과 철학이 고스란히 스민 '도산구곡'에 대한 비교 연구에 나서기도 했다.

도산구곡은 무이구곡과는 다르게 1곡부터 차례로 시작된다. 안동호로 인해 수몰되기 전까지는 옛길을 통해 도보로 이동 가능했지만, 지금은 1곡부터 5곡까지는 뱃길로만 볼 수 있다. 1곡 '운암'(雲巖)은 수몰되기 전 광산 김씨 예안파 집성촌인 외내마을과 인접한 곳이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퇴계 제자로 도덕과 덕행이 높았던 일곱 군자가 살았다 해 '오천군자리'로 불렸다. 2곡은 월천(月川)으로 조목 선생의 유적인 월천서당이 호수 곁에 자리 잡고 있고, 3곡은 오담(鰲潭)으로 역동서원이 있었던 곳인데, 지금은 상계고택과 비각만 남아 있다.

4곡은 분천(汾川)으로 분강촌으로도 불리며 영천 이씨 집성촌이 있었다. 농암종택 등 유적들은 낙동강 상류 가송리로 옮겨져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탁영(濯纓)의 5곡은 도산구곡의 중심, 도산서원이 있는 곳이다.

도보 길로 볼 수 있는 6곡 천사(川砂)는 넓은 강변에 쌓인 모래가 정결하고 광채가 아름답다 해 예로부터 천사미로 불렸다. 7곡 단사(丹砂)는 강물과 병풍처럼 두른 단애가 어우러져 천하의 절경을 연출하고, 8곡 고산은 퇴계 선생이 안동 땅의 수많은 경승 가운데서 산수 미의 첫째로 꼽을 만큼 압권이라 평했다. 청량산 입구 광석마을 초입에 있는 9곡 청량(淸凉)은 기암괴석이 우뚝 서 있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청량산이 한눈에 보여 낙동강 상류에 그려진 한 폭의 수묵화다.

1곡부터 9곡까지 20여㎞를 뱃길과 도보 길로 볼 수 있는 도산구곡은 무이구곡과는 생김새는 다르지만, 자연과 인간의 삶이 공존했다는 점과 퇴계 선생과 주희 선생이란 걸출한 인물이 학문을 정진한 곳이란 데서는 분명 닮은 점이 더 많다.

손상락 안동시 세계유산담당은 "중국 무이산시에 주자학과 무이구곡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퇴계학과 도산구곡이 있다.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퇴계와 주자의 학문적 성취와 그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두 지역의 인문 지리적 환경,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해 온 문화전통은 세계가 인정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의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따라서 성리학의 메카로서 두 지역은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비교연구와 활발한 문화교류를 통해 유교문화가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와 특수성을 밝혀 21세기 세방화 시대의 주역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과 주자학의 중심 중국의 무이산시가 공동으로 지켜내야 할 책무임과 동시에 이 시대의 요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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