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우지마라 하고/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잊어버리라 하고/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바람처럼 살다가고파/이 산 저 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내려가라 하네/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가수 양희은의 노래로 잘 알려진 '한계령'은 원래 정덕수 시인이 쓴 '한계령에서'라는 시의 일부분을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가 노래에 맞게 개작한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제대로 번역되어 소개되기만 했다면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도 있을 만한 문학성을 갖추고 있어서 누구나 들으면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 특히 힘들고, 외롭고, 아픈 기억으로 괴로운 사람이라면 더 가사가 가슴 깊이 다가온다.
정덕수 시인이 쓴 원래의 시는 온갖 상념들을 안고 무작정 산길을 헤매다가 한계령 정상에 선 화자가 자신의 삶과 홀로 늙으신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는 내용이다. 한계령이 있는 오색리 마을에 살던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시이다. 그런데 문학이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그렇게 썼다고 해서 독자들이 그대로 따라 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양귀자 작가는 이 노래에서 온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힘겹게 살아왔던 큰오빠의 삶을 떠올리며 같은 제목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소설에 나타난 한계령은 큰오빠가 어린 나이 때부터 가장이 되어 동생들을 이끌고 가던 힘겨운 삶의 길이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 간 정상은 '한계'(寒溪)라는 한자 그대로 추위만 있는 골짜기이기도 하고, 인간 존재가 만나는 '한계'(限界)이기도 하다. 정상을 보고 열심히 올라왔지만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큰오빠는 허무와 맞닥뜨리게 된다. 소설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항상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은 어느 순간 '내가 이러려고 여기까지 왔나' 하는 허무하고 허탈한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 생각에 빠지면 우울해지고, 삶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보다 더 힘들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산이 인간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울지 말고, 잊어버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면서 내려가라는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고 계속 상념에 빠져 있으면 아무것도 되는 것 없이 자신과 남들 모두 힘들어지기 때문이리라.
지금 우리나라에는 한겨울 한계령 정상에서 칼바람을 맞고 있는 것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 분이 있다. 그렇게 힘들 때에는 사람들의 장막에 싸인 구중궁궐 같은 곳을 벗어나 한계령을 직접 오르는 것도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산에 올라서 산이 하는 말을 듣고 오는 것이 더 좋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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