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산들이 울긋불긋한 걸 보니 단풍시즌이 맞는가 보다. 비록 단풍이 과학적으로 보면 나뭇잎이 기후변화로 인해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 녹색 잎이 노랗거나 갈색 또는 붉은색으로 변하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은 너무도 아름답다. 사람들도 이때쯤이면 쌀쌀해진 날씨에 겨울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단풍처럼 아름다운 황혼을 맞이할지 고민하게 된다. 또 낙엽을 보면서 자연이나 인생이나 때가 되면 사라지는 것이 만고불변의 법칙임을 깨닫게 되고 그때에 잘 맞춰 아름답게 물러날 수 있기를 바라보기도 한다.
물러나는 것이 화두가 된 요즘, 주목할 만한 이야기가 삼국사기 진성여왕조에 있다. 887년에 왕위에 오른 진성여왕은 평소 작은아버지인 각간 위홍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면서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고 위홍이 죽은 후에는 젊은 미남자들을 몰래 끌어들여 그들에게 나라의 정치를 맡겼다. 이로 인해 여왕의 남자들을 중심으로 측근정치가 행해졌고 일부 아첨꾼들이 왕의 힘을 믿고 전횡을 일삼으면서 백성들은 더 힘들어지고 각지에서 호족이 난립하면서 나라 기강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결국 진성여왕은 오빠인 헌강왕의 서자(효공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우습게도 오늘날 우리 모습이 1천100여 년 전 그때를 보는 것 같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국정이 농단되었고, 오랫동안 소위 문고리라 불리면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들이 떠나면서 배신하는 모습을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그 당시 혼란을 개혁하기 위해 충심을 다해 시무10조를 올린 최치원처럼 11월 12일 광화문에서 작금의 세태를 바꾸고, 기득권 세력 타파를 외치는 100만 촛불 여론이 불타올랐다.
우스갯소리로 가장 좋은 금(金)은 24K나 현금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는 말이 있다. 이 정도 민심이면 이제 우리 사회를 이끈 책임자들은 지금의 결과를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바로 그때가 지금이라고 현명하게 판단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단풍도 결국 때가 되면 낙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 세상사 얽혀진 문제들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있고, 그때를 놓치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곧 가을도 지나간다. 바쁘다는 이유로 이 계절을 그냥 보내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아름다운 자연을 걸으며 단풍을 보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잎들이 땅에 다 떨어지더라도 얼마 후 다시 태어나리라는 나무의 긍정 에너지만큼은 한 수 배우고 오자. 작금의 현실이 우리를 답답하게 하고 있지만, 나부터라도 먼저 떨어진 낙엽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마무리하고 적당한 때에 물러날 수 있는지 그 지혜를 달라고 빌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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