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부속(附屬) 정치

입력 2016-11-15 04:55:05

오스만 제국 시절 이스탄불의 궁정에는 '셀람릭'이라는 남성 전용 공간이 있었다. 셀람릭은 제국의 군주인 술탄의 거처이자 정무를 보는 곳이다. 반면 별궁 옆에 술탄의 여자들이 머무는 공간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하렘'(Harem)이다.

초기의 하렘은 시녀가 머무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셀림 2세 때 술탄의 애첩과 하녀들이 살게 되면서 하렘으로 발전했고 17세기부터 계속 증축되고 변모했다. '술탄의 술탄'으로 불렸던 술레이만 대제(1520~1566년 재임) 시절 하렘에 기거한 여인의 수는 300명, 16세기 말에는 1천 명을 넘겼다고 한다.

하지만 하렘은 단순히 여자들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역사학자 앙드레 클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하렘은 고관대작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또 하나의 정부로 기능했다'(술레이만 시대의 오스만 제국)고 썼다. 술레이만 이후 150년가량 하렘의 여인들과 흑인 노예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대신들은 물론 강대국 대사들마저 술탄의 눈에 들기 위해 하렘의 여인과 흑인 노예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는 것이다.

자유당 시절 이승만 정권의 몰락 원인에는 이승만의 사무비서 출신인 이기붕과 그의 처 박마리아의 전횡이 큰 몫을 차지했다. 서울시장, 국방장관, 국회의장을 지낸 이기붕은 '서대문 경무대'로 불린 자기 거처에서 나라를 쥐락펴락했다. 당시 '서대문 경무대만 통하면 안 되는 일도, 못 하는 일도 없다'는 말이 파다했다. 지금의 청와대 전신인 경무대보다 더 위세를 떨친 것이다.

특히 박마리아의 눈에만 들면 하루아침에 장'차관에 오르고 도지사나 별을 달 수 있었다. 이를 안 탐관들은 값진 것을 구해 들이밀었고 그와 비례해 박마리아의 권력욕은 더 커졌다. 빈농의 딸로 태어난 박마리아는 내심 영부인의 야욕까지 품었지만 3'15 부정선거로 궁지에 몰리고 일가족 집단자살이라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청와대 '관저'에 최순실 일가는 물론 끈이 닿은 의사 등이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보도다. 대통령을 뒷바라지하는 임무를 맡은 부속실과 관저에서 지난 4년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온갖 의혹의 중심이 됐다. 심지어 해외 순방으로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사이 최순실이 문고리 3인방을 통해 민정수석실의 경찰관들을 싹 바꾸라는 지시까지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자의 탐욕이 부른 비극적 결말에서 '최순실 게이트'도 예외가 아닐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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