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나쁜 일자리' 640만 명 돌파
한국이 비정규직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640만 명을 돌파하고 비중도 확대됐으나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더 커졌고, 같은 스펙의 정규직'비정규직끼리도 퇴직급여나 상여금, 시간 외 수당, 유급휴가 등을 받는 비중이 크게 차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일자리 찾는 노인 "일할 수만 있다면 열심히"
4일 오전 10시 대구 중구 한 직업소개소. 50~70대 구직자 5명이 맞은편 책상에 앉은 직원만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직원이 인터넷 검색을 하며 경비, 청소, 건설업체 등에 전화해 "아직 일자리가 있느냐"고 알아볼 때면 구직자들은 전화 너머로까지 들릴 만큼 "임금이나 근무 기간이 얼마든 상관없다. 일자리만 있다면 열심히 하겠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최모(66) 씨는 "최근 다니던 경비업체 계약이 만료돼 새 일자리를 구하러 나왔다.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집세와 생활비를 벌 수 있으니 오전 9시부터 나와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직업소개소 관계자는 "50대 남성들까지는 임금이 그나마 나은 건설현장이나 제조업체로 주로 가고, 그 외의 남녀 구직자는 대부분 월급이 60만~100만원 선인 계약직 일자리를 구해 간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하루 20명은 방문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대구 북구 한 종합 입시학원. 이곳 카운터에서 일하는 남녀 계약직 직원 2명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하며 시급 6천500원, 월 110만원가량을 받고 일한다. 주요 업무는 학부모 손님 응대와 학생 출결 관리, 학원 로비 및 복도 청소, 시험지 매기기 등이다.
직원 김모(27) 씨는 "직장을 구할 때까지 외국어 학원에 다닐 수강료와 생활비를 벌고자 지난해 연말 일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 일만 할 수도 없고 월 100만원 초반대 임금으로 결혼이며 생활도 할 수 없다"며 "3년 전 은행에 취직한 친구는 벌써 5천만원을 모아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나도 어서 정규직으로 취직하고 싶다"고 했다.
◆비정규직 근로자 32.8%… 작년보다 17만 명 늘어
노동 시장에서 고용 유연성이 높아지면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일반 소비자이기도 한 노동자 개개인의 경제력은 극히 낮아져 소비절벽과 이에 따른 경제 경색까지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럼에도 국내 노동 시장에서는 정규직 일자리에 비해 비정규직, 즉 '질 나쁜 일자리'가 대폭 늘고 있어 노동 안정성과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를 일정 수준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임금근로자는 1천962만7천 명으로 1년 전보다 31만5천 명(1.6%) 늘었다.
이 가운데 정규직 근로자(1천318만3천 명)는 전년보다 14만2천 명(1.1%) 증가했다. 비정규직 근로자(644만4천 명)는 더 큰 폭인 17만3천 명(2.8%) 늘었다.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32.8%로 0.3%포인트(p) 상승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난 것은 시간제 근로자(248만3천 명)가 1년 전보다 24만7천 명(11.0%)이나 증가한 영향이다. 정부는 고용 유연성을 늘리고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고자 시간제 근로를 장려하고 있다.
아울러 기간제 등 '한시적 근로자'(365만7천 명)는 1만9천 명(0.5%), 파견'용역 등 비전형 근로자(222만 명)는 1만4천 명(0.6%) 증가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최근 3개월(6∼8월) 월평균 임금은 149만4천원으로 2만7천원(1.8%) 증가했다. 정규직 근로자 279만5천원의 절반 수준이다. 성별'연령'근속 기간'직업'산업 등이 서로 동일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 격차는 10.5%로 나타났다. 이 비중은 0.3%p 확대됐다.
복지 격차는 더욱 컸다. 퇴직급여를 받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40.9%(정규직은 85.5%), 시간 외 수당을 받는 비율은 24.4%(정규직은 58.4%)에 그쳤다. 상여금을 받는 비정규직은 38.2%(정규직은 85.4%)로 오히려 0.8%p 하락했고 유급휴일을 받는 비정규직도 0.5%p 줄어든 31.4%(정규직은 74.3%)였다.
◆50'60대 비정규직 특히 급증, '노인 빈곤 해소' 필요성 대두
특히 60세 이상 노인 비정규직 근로자는 지난 10년 새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0년간 전체 비정규직이 545만7천 명에서 644만4천 명으로 약 100만 명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이는 모두 중장년층의 비정규직 증가가 견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60세 이상 비정규직은 146만8천 명으로 전체 연령대(644만4천 명) 중 가장 많은 22.8%를 차지했다. 10년 전인 2006년 8월(61만1천 명)과 비교해 2.4배나 증가한 것이다.
50대 비정규직도 138만2천 명(21.5%)으로 두 번째로 많았으며 같은 기간 1.6배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20대(114만1천 명→112만9천 명), 30대(138만5천 명→99만4천 명), 40대(132만5천 명→127만7천 명) 비정규직은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면 더 많은 중장년 및 노년 계층에 일자리를 나눠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다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비정규직과 함께 안정적인 일자리도 균형 있게 제공돼야 국민 전반의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율이 높은 점은 고용 시장이 비정규직 중심의 단순 노무직에 집중돼 낮은 질을 보이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3년 기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7.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를 수년째 끌어안고 있다.
또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서울에 사는 만 65세 이상 일하는 노인 1천 명을 조사한 결과 85.4%가 경비'청소'가사도우미 등 단순 업무직에 종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는 "노인 비정규직 증가는 중장년 인구 자체가 늘어난 배경도 있지만 다른 연령대에 비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정년 단축, 정부 정책 등 구조적 원인도 있다"며 "양질의 일자리를 균형 있게 제공하지 못하면 노인 빈곤 문제는 개선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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