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막말과 거짓말

입력 2016-11-14 04:55:05

지난주 미국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우리나라에서는 막말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언론 보도에 의하면) 히스패닉 유권자를 비하하는 발언, 성차별적 발언, 성희롱성 발언으로 끊임없는 물의를 일으켰었다. 거기다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골수 운동권 학생들의 구호였던 주한 미군 철수를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다녔으니 우리나라 우파들에게서도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만약 우리나라라면 그가 한 말 중 하나만 있어도 후보를 사퇴해야 함은 물론이고 정치 생명도 끝날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 일어나서 웬만한 일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올해 가장 충격적인 일이 되었을 것이다.

미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미국에서는 이번 대선을 좌충우돌 트럼프와 안정적인 힐러리의 대결 구도로 보는 한국의 시각과 달리 막말로 공격하는 트럼프와 거짓말로 빠져나가려는 힐러리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트럼프를 찍은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거짓말의 범위에는 정치인들이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나오는 궁색(窮塞)한 변명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궁색하다는 것은 한자 뜻 그대로 '다하고 막힌' 말이다. 그래서 말이나 태도, 행동에 이유나 근거가 매우 부족한 것이다. 그냥 시원하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면 욕은 좀 더 먹더라도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될 부분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그 길보다는 궁색한 길을 택한다. 물론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사과를 하면 리더십에 상처가 나서 재기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지만, 궁색한 변명으로 어찌어찌 위기만 넘어가면 국민들이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말을 하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며, 정치적 이념이 담긴다. 말의 그런 특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학술적으로는 '담론'(談論)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트럼프가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할 때 언론에서는 막말이라고 했지만, 보수적인 백인층은 더욱 결집했던 것도 정치적 담론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중간층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반대 진영이 결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말들이 하나 마나 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지지율 1위를 기록한다는 것은 대선 정국에 들어서면 큰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 공격적인 새로운 담론을 가진 인물이 우리나라에서도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미국 대선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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