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스플릿

입력 2016-11-11 04:55:05

볼링 도박의 '아찔한 세계' 처음이지?

신예 최국희 감독의 데뷔작이며,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볼링을 소재로 다룬다. 레인에 배치된 다양한 앵글의 카메라가 속도감 있게 굴러가는 핀을 포착하며, 스트라이크를 알리며 쨍하고 울리는 강렬한 사운드가 영화를 보는 내내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한다. 1990년대에 성행했다가 지금은 인기가 시들해진 볼링의 쾌감을 다시금 눈과 귀로 만끽하게 된다. 거기에다 불법 도박이라는 소재가 주는 긴장감이 만만치 않다.

'스플릿'(split)이라는 단어는 첫 번째 투구에서 쓰러지지 않은 핀들이 간격을 두고 남아 있는 상태를 지칭하는 볼링 용어다. 스플릿이 나면 보통 큰 실수를 범했다고 여겨지며 처리하기 어렵다. 제목은 전직 국가대표였던 볼링 선수인 주인공이 불법 도박에 협조한 한때의 실수로 인해 바닥까지 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현재를 비유한다.

전직 볼링 국가대표 선수 철종(유지태)은 사고로 다리를 다친 이후, 낮에는 가짜 석유를 팔고, 밤에는 볼링 도박판의 선수로 뛰며 근근이 삶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중 볼링장에서 자폐 성향을 보이는 볼링 천재 영훈(이다윗)을 만나고, 생계형 브로커 희진(이정현)은 두 사람을 서포트하며 도박판을 벌려 나간다. 철종을 미워하는 두꺼비(정성화)도 그 판에 끼어든다.

영화는 신선한 소재를 활용하고 있지만, 한판 큰 건을 앞에 두고 플레이를 펼치는 이야기 전개나 캐릭터 조합은 전형적으로 보인다.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좌절한 루저들이 힘을 합쳐 돈과 권력을 가진 악당을 뒤흔들거나, '레인맨'처럼 주인공이 자폐인을 이용하려다가 그의 순수함에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여기에 우정과 사랑 사이의 관계인 철종과 희진이 영훈과 함께 생활하며 유사가족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들의 애정에 기반을 둔 공동체 관계는, 혈연으로 이어졌지만 돈 앞에서 비정해진 현대 가족의 위기를 보여준다.

야구나 축구 등 인기 스포츠를 중심으로 연일 터져 나오고 있는 스포츠 승부조작 문제가 영화에 반영된다. 정정당당한 대결 정신이 핵심인 스포츠에 돈이 개입되는 순간 그 스포츠는 타락하고 말 뿐 아니라, 개인으로 봐서도 한순간 돈의 유혹 때문에 정의를 부정했을 때, 그 대가가 얼마나 처참한지를 보여주는 교훈성이 있다.

전형적인 전개와 캐릭터 관계, 그리고 진부한 교훈성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묘하게 매력이 넘친다. 일단 촬영과 편집, 사운드 등 영화적 테크놀로지의 충분한 활용을 통해 스포츠 영화에서 기대하는 솟구치는 쾌감을 선사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이 터지며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서사 전개로 인해, 계속 이어지는 볼링 대결을 손에 땀을 쥐고 구경하게 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이나, 못된 감화원 원장, 못된 엄마와 계부를 저쪽에 놓고, 정의롭고 능력 있는 주인공과 순수한 조연을 이쪽에 놓아 선악 구도를 명확하게 하고 있는 것은 낡은 틀로 보이기도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악당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보는 것도 불편하다. 하지만 몇몇 허점에도 불구하고 3인의 주인공 캐릭터들은 공감이 가고 매력적이다.

특히 자폐인 볼링 천재 영훈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잘 그려진다. 이 인물은 감독이 진짜 볼링장에서 마주쳤던 한 자폐인을 모델로 했다고 전해진다. 영훈을 연기하는 이다윗은 '시'의 범죄 소년, '명왕성'의 가난하고 영리한 고등학생, '더 테러 라이브'의 세상에 복수하려는 천재 테러범 등 그간 가난하고 울분에 찬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왔다. 이다윗이 연기하는 자폐 천재 캐릭터는 '말아톤'의 조승우나 '오아시스'의 문소리 연기에 버금갈 정도다. 그는 까딱거리는 손가락, 불안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눈동자, 엉거주춤한 자세, 어눌한 발음과 일정 소리에 대한 민감한 반응 등 세밀하게 자폐인의 특징을 살려서 연기한다. 영화에서 간혹 터져 나오는 유머와 감동은 거의 모든 부분 영훈 캐릭터에서 나온다.

한때의 잘못된 선택으로 오랫동안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상처 많은 주인공이 다시 일어서려는 노력에 자연스레 박수를 보내게 된다. 자폐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선입견을 깨는 순간이 있으며, 볼링이 정말 재미있는 스포츠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철거되기 직전의 허름한 볼링장에서 최신식 화려한 락 볼링장까지 색다른 공간이 다양하게 등장하여 캐릭터의 흥망성쇠를 상징한다. 25억원가량의 중저예산 영화가 비수기 극장가에서 선전해주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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