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여행 많이 다녀라"
박찬석(朴贊石'1940.9.5~'산청) 전 국회의원은 세계인문지리 글쓰기와 인문지리 여행을 통한 시민의식 제고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또한 10년 넘게 매주 토요일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 함께하는 '토요 마당'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과제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있다.
경북대학교 총장(1994.9~2002.8)을 역임했으며, 노무현 정부 때 새천년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2004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제17대 열린 우리당 비례대표 5번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 대담
#자전거만 한 생활 스포츠 없다
김병준: 요즘도 자전거를 타시나?
박찬석: 자전거를 굉장히 오래 탔다. 1994년부터 탔으니까. 서울서 강릉도 가고. 서울서 당일 밤을 새워 한계령을 넘어 속초까지 간 적도 있다. 예전에는 테니스도 쳤는데, 갑자기 무릎과 허리가 안 좋더라. 그래서 요즘은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김병준: 자전거 번개 모임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박찬석: 일본에서 6개월간 자전거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자전거를 타면 모르는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김병준: 국회의원 하실 때 자전거 타고 속초까지 간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박찬석: 그때 속초에서 바다 축제가 있었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함께 갔다. 나는 자전거를 스포츠라기보다는 생활 자전거로 굉장히 강조했다. 당시 대통령도 자전거 마스터플랜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내가 만들었다.
김병준: 전국 자전거 길 만드는 게 마스터플랜인가?
박찬석: 지금 자전거 길은 문제가 있다. 자전거를 지원한다고 하면 자전거 행사 열고 자전거 몇 대 내놓는 식이다. 나는 생활 자전거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 건강에도 좋고, 에너지 절약에도 좋고, 환경보호에도 좋다.
김병준: 도시에 어떻게 자전거 길을 낼 수 있나?
박찬석: 국회에 있을 때 그 일을 시작하니까 언론에서는 너무 생뚱맞다고 비판을 많이 했다. 다른 일이 산적한데 왜 하필 자전거냐는 식이었다.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자전거가 가진 의미가 굉장하다. 건강, 경제, 환경 등에 말이다.
김병준: 그런데 자전거가 꽤 비싸다? 평범한 사람이 타려면 대충 어느 정도 값이면 될까?
박찬석: 보통 사람이 생활 스포츠로 이용하려면 100만원짜리 정도면 충분하다. 어디 행사장에서 경품으로 주는 10만원 안팎의 자전거는 안 타는 게 좋다. 그런 자전거는 좀 타다 보면 기아와 보디가 퍼진다.
김병준: 요즘 대구에서 활동을 아주 많이 하신다고 들었다.
박찬석: 토요 마당이라고 해서 시민단체 대표들, 시민운동에 관심 있는 분들이 토요일에 만나 막걸리나 해장국을 먹으면서 서로의 생각도 듣고, 안부도 묻곤 한다. 한 10년 됐는데, 30명쯤 모인다.
김병준: 그런 모임이 지속된다는 것이 대단하다.
박찬석: 그게 다 필요한 모양이다. 모이라는 이야기도 없고 누가 강요하는 사람도 없는데 거의 늘 30명씩 모인다. 전라도 모임, 강원도 모임들과 교류도 한다. 그렇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니 좋다.
#인문지리 공부하다 보면 느끼는 정치의 중요성
김병준: 세계인문지리기행은 계속 쓰고 있나?
박찬석: 그건 한 문과지에 쓰는 것인데, 740회쯤 썼다. 14년 정도 했다.
김병준: 국회의원 하시면서도 계속 썼나?
박찬석: 그전에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썼다.
먹물 좀 들었다는 사람들은 역사 이야기를 자주 한다. 세종 때가 어떻고 나폴레옹이 어떻고 하는 식이다. 지금은 지리를 알아야 한다. 지리를 모르면 하루도 살 수 없다. 역사를 모르면 무식하다 소리를 듣지만 지리를 모르면 하루도 못 산다고 한다.
스마트폰에는 수천 개 앱이 있지만 가장 핵심 되는 앱은 길 구경이다. 15세기 말엽에 콜럼버스가 바다로 나갈 때 제일 중요했던 것이 방향과 위치였다. 지금도 똑같다. 지난 10, 20년 동안 세상이 어마어마하게 변했다. 이 변화의 기초가 뭐냐? 위치다. GIS의 변화다.
마젤란이 여행할 때 수단은 배였지만 자기 위치를 어떻게 알았는가? 망망대해 가운데 있을 때도 자기 위치를 알아야 동쪽으로든 서쪽으로든 갈 것 아닌가. 그 시절에 항해사들이 북극성을 보고 자기 위도를 측정하고 태양을 보고 자기 위치를 알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았다. 지리학이란 위치와 자리를 찾는 학문이다.
김병준: 과거에는 태양과 별을 보고 찾았다?
박찬석: 갤리선을 타고 다니던 시절에는 사람이 배를 젓고 다녔다. 그러자면 사람이 많아야 하고 물과 식량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그런데 범선이 나타나면서 사람이 확 줄었다. 바람의 힘만으로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배가 나오면서 지리사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김병준: 좀 더 멀리?
박찬석: 석 달이고 넉 달이고 갈 수 있게 됐고, 좁은 바다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김병준: 바다를 건너 다른 세계로 연결된다는 것이 단순히 지리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박찬석: '박찬석의 세계지리산책'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을 자주 확인한다. 각국, 각 대륙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풍물도 중요하지만, 정치 경제도 알게 된다. 가령 포르투갈은 16세기만 해도 세계제국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보다도 못산다. 왜 그럴까? 정치가 중요하다. 민주주의가 참 중요하다. 그런데 배고픈 시절을 지나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말을 인정 안 한다. 경제는 중요하다고 하는데 민주주의는 왜 중요한지 모른다. 그래서 포르투갈이나 알제리, 모로코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하면 잘 이해한다.
김병준: 세계지리산책은 어느 나라까지 거쳤나?
박찬석: 14년 동안 742회.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고 있는데, 지역과 인구에 따라서 횟수와 시간이 달랐다. 중국은 60회쯤 했다. 인구 크기가 세계사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서 2시간짜리도 있고 50시간짜리도 있다.
김병준: 현장은 가보는 편인가?
박찬석: 대부분 가봤다. 이틀쯤 자고 오면 다녀왔다고 할 수 없다. 중국은 수십 번 갔다. 중국은 한국 인구의 27배, 면적은 100배다. 중국을 100일 동안 봐야 한국을 하루 동안 본 것과 같은 셈이다.
텔레비전에 여러 가지 여행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이 많다. 그러나 그건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이지 깊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고 재료를 봐야 내용을 알 수 있다.
김병준: 지금 여기 계시더라도 늘 다른 세상에 관심이 많겠다.
박찬석: 단체로 여행하면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최대한 값싸게 여행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짠다. 80만원으로 유럽을 왕복할 수 있는 아주 저렴한 프로그램을 짜기도 한다.
김병준: 아무래도 일반인들 여행과는 다른 마음으로 볼 것 같다.
박찬석: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을 주로 찾아다닌다. 단체 관광은 좀처럼 가지 않는다.
세계를 다니면서 경치라는 게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물어보니 미학, 철학까지 다 나오더라. 산이 있고 바다가 있어 굉장히 아름답다고들 한다. 왜 아름답게 보일까? 내게 아름답게 보이면 다른 동물들한테도 아름답게 보일까.
김병준: 아름답고 추하다는 관념이 없을지도 모른다.
박찬석: 교육을 통해서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지, 아니면 본능인지.
김병준: 영화 '부시맨'에 그런 장면이 있다. 영화에서 부시맨이 8등신 백인 여성을 보고 어떻게 저렇게 못생겼을까, 그런 말을 한다.
박찬석: 그런 것이 문화적인 게 있다. 예를 들면 남미에서는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50% 가까이 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두 인종 간 결혼이 1%가 안 된다. 흑인이라고 하면 가난하고 못생겼고 추하다는 인식이 있다.
북미는 왜 그렇고 남미는 왜 그럴까. 여기에 문화적 배경이 있다. 서기 700년 무렵 무어인들이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했다. 1492년까지 이베리아를 흑인들이 지배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는 흑인이 지배자이고, 부자이고, 돈 있고 편리한 것을 다 제공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흑인에게 시집가고 흑인하고 친하다는 것이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부를 얻는 길이었다.
그래서 포르투갈 사람들이 남미의 사탕수수밭에 흑인 노예를 데려갔지만,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흑인들이 예전의 무어인과 같은 느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흑인과 결혼하는 게 돈만 있으면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미국은 흑인을 노예로만 써봤으니 흑인을 무시하고, 소외시키고 그랬다. 우리나라도 그런 문화가 많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서양 여자들 모양을 따라간다. 눈도 크고 허리는 잘록, 하여간 다리가 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들이 책 안 읽어 아쉽다
김병준: 공부를 끊임없이 하셔야겠다.
박찬석: 재미를 위해 하는 거다. 대학교수 시절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한다. 책 보는 게 유일하게 재미있는 일이다. 어딜 가더라도 책을 가지고 간다. 책 한 권 들고 커피숍 가고 종일 책을 읽는다.
김병준: 커피숍에서 쫓아내지 않나?
박찬석: 젊은 사람들이 많은 가는 커피숍에 간다. 거기 가면 젊은 사람들을 볼 수도 있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하다가 모르는 것 있으면 물을 수도 있고, 거의 10시간씩 앉아 있다. 그게 최고 재미다.
김병준: 천문학 서적을 많이 보시면 혼자 중얼거리는 게 많다는데.
박찬석: 그런 기초가 있어야 지리서 같은 것도 본다. 요즘 지리학 책은 정말 마음에 안 든다. 학회에 나가서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제도권에 들어오면 밥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쓴다. 밥벌이를 위해 책을 쓰니까 책이 책이 아니다. 읽는 사람이 없는 책이고 논문이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어느 분야나 다 그렇다.
지리학이 얼마나 재미 있는 분야인가. 경제 정치도 재밌다. 이처럼 재미있는 것을 안 읽도록 쓰는데 누가 읽나.
김병준: 강연은 얼마나 자주 하나?
박찬석: 강의는 하지만 강연은 하지 않는다. 사실 강의도 하기는 하는데 TV에 뜨는 사람들처럼 가식적으로 비칠까 싶어서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학회에서 해달라고 해도 안 한다.
김병준: 글만 쓰고 있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
박찬석: 글을 쓰다가 보면 진화한다. 같은 사건을 보고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는 데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김병준: 요즘 자전거 안 타시고 뭐하나?
박찬석: 파크골프라고, 골프와 게이트볼 사이에 있는 스포츠다. 골프를 치다 보면 도대체 왜 골프채가 13개나 필요하나, 생각이 드는데 파크골프는 퍼트 하나 가지고 친다. 굉장히 유행하고 있다.
김병준: 어렵지 않나?
박찬석: 거리가 50m짜리도 있고, 100m짜리도 있다. 한 번 치면 30~50m 정도 날아간다. 많이 걷는다. 매일 아침 나간다. 누구랑 같이 나갈 필요가 없다. 나가기만 하면 누구든지 함께 칠 수 있다.
김병준: 740회, 14년 동안 연재하면서 지리 산책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박찬석: 우리 민족이 잘살 수 있는 지혜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고, 여행을 많이 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살 수 있는 지혜를 공유했으면 좋겠다.
김병준: 사람들은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다고 한다. 어떻게?
박찬석: 꼭 책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하다 보면 바깥으로 확산되고, 자기 철학이 전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대학생과 교수들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영어 배우고 스펙 쌓고 컴퓨터한다고 인간이 가져야 할 본질적인 것, 사유를 안 하고 사는 것 같다.
대학교수들이 너무 공부를 하지 않는다. 나라가 이토록 어려운데 무식해서 말을 계속 못하겠어. 남북문제가 어찌 되는 건지 뭘 공부를 하는지. 뭘 하시는지 문자만 쓰면, 영어만 쓰면 지식인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인데 교수님들이 너무 책 안 읽는 것이 아쉽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대학생들은 상황이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교수들은 책을 읽어야 한다.
'김병준의 대담'을 마치며...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국무총리에 내정됨에 따라 '김병준의 대담'을 이번 주로 종료함을 알려 드립니다. '김병준의 대담'은 2015년 1월 매일신문이 조간 전환과 함께 야심 차게 진행해온 격주 대담으로 김병준 교수가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교육 등 각계의 리더들을 만나 사회 전반의 문제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전망해 온 본격 인터뷰 기획물입니다.
2015년 1년 동안 김병준 교수와 각계 리더들이 나눈 대화는 올해 3월 '김병준 대담'(지식중심)으로 출간돼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김병준 대담'은 각 분야 리더 및 전문가로 첫 번째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낸 사람들이 새로운 분야, 새로운 가치에 도전하는 모습을 인터뷰함으로써 '양적 팽창'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사회가 이제는 '질적 전환'을 위해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매일신문은 당초 '김병준의 대담'을 2016년 말까지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김병준 교수가 국무총리에 내정됨에 따라 더 이상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게 된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병준 교수는 미국 델라웨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통령 정책실장(2004.6~2006.5), 제7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겸 부총리(2006.7~2006.8) 등을 역임했습니다. 국민대학교 교수이며 2008년부터 공공경영연구원 이사장으로 있습니다. 지금까지 '김병준의 대담'을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조두진기자@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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