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코바체프 "연주회는 시민과의 약속"…모친 부고에도 무대 서다

입력 2016-11-07 04:55:02

대구시향 지휘자 코바체프 정기공연 열흘 전 슬픔 접해

줄리안 코바체프
줄리안 코바체프

단원들 조의금조차 안 받고 "혼신의 연주로 대신해 달라"

대구시립교향악단(이하 대구시향)의 '제428회 정기연주회'(10월 28일)를 열흘 앞둔 지난 10월 18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줄리안 코바체프(사진)는 슬픈 소식을 접했다.

어머니 자카리나 코바체프 여사가 독일 바드라이헨할에 있는 요양원에서 오랜 투병 생활 끝에 향년 86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주변 사람들과 활기차게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는 코바체프였지만, 타국에서 맞이한 모친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처음에는 망연자실한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현실임을 깨닫고는 울음을 토했다. 임종도 못하고 어머니 홀로 먼 길을 떠나시게 했다는 자괴감에 그는 좀처럼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직업상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그가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건강 회복을 바라는 기도와 치료·간병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뿐이었다. 평소 어머니를 자주 찾아뵐 수 없었고, 어머니가 투병 중인 탓에 전화통화도 자주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어머니에게 코바체프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으로서 홀로 계신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휩싸인 코바체프는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했다. 대구시향 측은 독일로 향하는 가장 빠른 항공편을 알아보겠다며 나섰지만, 코바체프는 고개를 저었다.

"열흘 후에는 매우 중요한 공연(제428회 정기연주회)이 있다. 어머니가 지금도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편히 눈을 감지 못하실 것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그러나 대구시민들과 이미 약속된 공연을 내 개인적인 사유로 변경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머니도 원치 않으실 것이다."

대구시향 측은 "효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구시민들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시민들에게 최대한 양해를 구할 테니 어머니께 다녀오라"고 권했다. 그러나 코바체프는 공연을 예정대로 마치고 독일로 떠나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이후 그는 장례에 필요한 준비 권한을 변호사와 법정대리인에게 위임하고, 연주회 준비에 매진했다.

뒤늦게 코바체프의 모친상 소식을 접한 대구시향 단원들은 깊은 슬픔과 애도를 표했다. 합주 연습을 위해 모인 단원들은 한국에서도 빈소를 차려 조문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의견을 냈지만 코바체프는 "나의 큰 슬픔에 여러분이 보여준 따뜻한 관심과 위로의 마음만으로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한가족이다. 그리고 조의금은 받지 않겠다. 나를 향한 여러분의 애틋한 마음은 10월 28일에 있을 연주회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로 대신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한국에 온 이후 코바체프는 단원들의 경조사를 일일이 챙기며 축하와 위로를 전해왔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모친상에는 단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코바체프와 대구시향 단원들은 최선을 다해 연주에 임했고, 제428회 정기연주회는 전석 매진을 이루며 성황리에 끝났다. 그는 11월 1일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독일 뮌헨으로 떠났다. 그는 4일 장례식을 마치고 10일 귀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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