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관계자 "화원 집에서 머리 만져주고 의상 코디, 정윤회가 실세인 줄 알았는데…"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지난 18년간 대구경북에 드리운 최순실(60) 씨의 비선 행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998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최 씨는 비선 실세의 입지를 다진 뒤 2013년 딸 정유라(20) 씨의 상주 승마대회 때 비선 실세로서의 '강력한 힘'을 드러냈다.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의 첫 등장 장소도, 힘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장소도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대구경북이었다.
◆비선 실세의 첫 등장은 대구경북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의 집에는 최순실 씨가 버티고 있었다. 당시 선거캠프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 씨는 1998년 선거 기간 중 대구 달성군 화원읍 대백아파트 박 후보 집에서 함께 지내며 박 후보의 머리를 만져주고, 입고 나갈 옷을 정해주는 일 등을 했다.
언뜻 보면 사소한 일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가장 힘센 역할이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뒤늦은 해석이다.
캠프 관계자들은 "당시 박 후보는 어머니 육영수 여사와 같은 헤어스타일을 했는데 이 머리를 하는 데 1시간이 걸렸다. 이를 최 씨가 도와주고 박 후보의 의상을 코디해줬다"며 "박 후보 집에는 방이 3개 있었는데 제일 큰 안방을 박 후보가 사용하고 최 씨와 전 남편 정윤회 씨, 그리고 비서 1명이 같이 아파트에서 생활했다"고 전했다.
캠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만 해도 최 씨의 존재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정윤회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으로 전면에 나서면서 최 씨는 상대적으로 가려졌던 것.
이와 관련, 달성군 정치권에 오래 있었던 한 인사는 "1998년 보궐선거 때 당사무실에서 최 씨의 남편 정윤회 씨를 두어 번 봤지만 최 씨는 전혀 본 적이 없다. 이번에 이름을 처음 들었다. 정윤회 씨는 악수도 잘 해주지 않는 등 상대적으로 거만한 모습을 보여 '이 사람이 실세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최 씨는 선거사무소에 두 번 정도 들른 것으로 기억나는데 선거운동을 하러 들른 것이 아니라 시장에 물건을 사러 왔다 15~20분 정도 있다가 갔다. 최 씨는 특별한 미모도 못난 얼굴도 아닌 평범한 얼굴이어서 강렬한 기억은 없다. 최 씨를 실세라고 판단하기 어려웠던 이유"라고 했다.
그러나 최 씨는 당시 보궐선거 때부터 드러나지 않은 '비선' 역할을 한 것으로 캠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최 씨는 그 당시 박 대통령과 함께 지냈던 달성군 대백아파트(105.60㎡'화원읍 성산리) 매입과 매각 과정부터 개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캠프 관계자들은 "아파트 매입, 매각 계약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숨진 이춘상 보좌관이 대행했다. 이 보좌관은 최 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가 발탁한 인물로 최 씨가 아파트 임차 등에서 주도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비선 실세로서의 힘을 보인 곳도 대구경북
최 씨가 비선 실세로 강력한 존재감을 처음으로 드러낸 것은 지난 2013년 4월 상주국제승마장에서 열린 제42회 KRA컵 전국 승마대회였다.
당시 최 씨의 딸 정유라 씨는 이 대회에 참가해 2등을 차지했고, 때아닌 판정 시비가 일었다. 상주경찰서가 우승을 차지한 창원의 김모 선수가 주최 측으로부터 '마방'(말이 쉬는 방)을 특혜 배정받았다는 의혹과 관련, 이례적으로 수사를 벌인 것이다.
수사의 초점은 상주국제승마장이 가마방과 본마방 등 두 종류의 마방을 운영하고 있는데 주최 측이 우승을 차지한 김모 선수의 말을 상대적으로 더 넓고 스트레스를 적게 받을 수 있는 본마방으로 옮겨지게 해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느냐는 부분이었다. 심판의 불공정한 채점이 1, 2위 수상자를 바뀌게 한 요인이었는지도 수사대상이 됐다.
상주경찰서는 심판과 대회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했지만 "특혜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내사 종결했다. 이례적이었던 이 수사는 최 씨의 딸이 출전한 승마대회여서 경찰이 '위'의 지시를 받아 한 게 아니냐는 설이 파다했다.
이에 대해 당시 우철문 전 상주경찰서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정윤회'최순실의 딸이 이 대회에 참가했다는 것은 내사 종결 후 알았다"며 "윗선의 지시는 없었으며 내사는 자체 첩보를 바탕으로 진행됐다"고 해명했다.
경찰수사는 결국 무혐의로 종결됐지만 수사가 진행되던 비슷한 시기 승마협회가 포함된 문화체육계에는 큰 폭풍이 휘몰아쳤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7월 23일 국무회의에서 "경기단체 임원들이 본인 명예를 위해 협회장을 하거나 오랜 기간 운영하면서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우리 체육 발전을 위해 바로잡아야 한다. 실력이 있는데도 불공정하게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새 정부에선 있어선 안 되겠다"며 느닷없는 체육계 성토에 나섰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이 있고 한 달 후 문화체육관광부는 8월 26일부터 같은 해 12월 24일까지 대한체육회 산하 2천99개 전국 및 시'도 경기단체에 대한 특별감사에 들어갔다. 문화부는 동시에 검찰'경찰과 함께 스포츠 4대 악(승부조작'폭력'입시비리'조직사유화) 척결 합동수사본부도 만들어 수사까지 벌였다.
문화부의 우선 감사대상은 최 씨의 딸과 관련해 판정시비가 불거진 승마협회였다.
문화부 특별감사는 문화부 주무국장과 과장이 경질되는 사태까지 만들어냈다. 당시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이 감사 도중인 2013년 9월 갑자기 대기발령을 받고 교체됐다.
다음 해 물러난 유진룡 전 장관은 "노 국장과 진 과장 두 사람이 '승마협회 내부의 최순실 씨와 관련된 파벌싸움을 정리해야 한다'고 보고하자 박 대통령이 직접 두 사람을 거명하며 '참 나쁜 사람들'이라며 경질을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정유라 씨는 승마협회에 대한 감사가 끝난 뒤 2014년 6월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그해 9월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며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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