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목소리 들려줘 '알고도 당한 보이스피싱'

입력 2016-10-23 20:30:00

치밀·정교해진 범죄 수법…사투리·음색까지 똑같게 변조, 직장·결혼날짜 개인정보 파악

"사기라고 충분히 의심됐지만 당장 아들 목소리가 들리니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대구 북구에 사는 A(56'여) 씨는 지난 9월 28일 오전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2박 3일 일정으로 예비군 훈련을 간 아들이 3천만원의 빚보증을 섰는데 약속한 기한이 지나 붙잡아두고 있으니 돈을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장기포기각서도 받았다며 당장 선금 1천만원을 보내지 않으면 마취해 배를 가르겠다고 협박했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한 A씨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려달라고 요구했다. 들려온 목소리는 놀라웠다. "어머니 죄송해요"라는 말이 사투리부터 음색까지 아들을 똑 닮았던 것. 혼비백산한 A씨는 현관문도 잠그지 않은 채 집을 뛰쳐나가 돈을 부칠 수밖에 없었다.

B(64) 씨도 지난달 비슷한 수법의 보이스피싱에 당해 3천500만원을 날렸다. 범인이 전화를 걸어 아들이 친구 빚보증을 섰고, 신병을 확보하고 있다며 돈을 요구했다. 범인은 B씨의 직장과 곧 있을 아들의 결혼식 날짜까지 알고 있었다. B씨는 "만에 하나 정말 우리 아들을 아는 사람이면 어쩌나 싶어 돈을 넘겼다"며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돈을 직접 전달케 하고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는 등 치밀한 수법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수법이 더욱 정교하고 치밀해지면서 시민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특히 범인이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상세히 알고 접근하는 탓에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알고도 속는 경우가 적잖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한 피해액 규모는 1천70여억원으로 2007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였다.

피해자 A씨는 "우리 아들이 나를 '엄마'가 아닌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것까지 알고 목소리를 따라하더라"며 "면식범인지 아니면 통화내용이 도청되고 있는 건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면식범보다는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은 개인정보가 새나가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경찰도 작년부터 은행에 1천만원 이상의 현금을 인출할 때 바로 연락받을 수 있게 핫라인을 구성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은 사회문제로 대두될 만큼 심각해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전화를 받으면 반드시 진위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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