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맨해튼' 뒷골목
대구에서 가장 넓은 간선도로인 달구벌대로와 동대구로가 교차하는 범어네거리는 최근 10년 새 대구의 핵심 요지로 떠올랐다. 2005년 도시철도 2호선 개통 이후 인근에 고급 아파트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교통은 물론 교육'금융'행정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자연스레 유동인구도 많아 요식업계가 항상 눈여겨보는 '핫 플레이스'로 꼽힌다. 하지만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들로 가득한 대로변과 달리 뒷골목에서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가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진다.
◆인간미 넘치는 맨해튼의 뒷골목(?)
대구 수성구청은 10여 년 전부터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월 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로 대표되는 세계 금융'문화 중심지인 미국 뉴욕 맨해튼지역처럼 누구나 알고 가보고 싶은 명품거리로 조성, 지역 경제를 활성화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맨해튼 뒷골목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만 아름다운 게 아님을 안다. 세련되지는 않아도 인간미가 넘치는,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걸어보고 싶은 그런 골목길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법이다.
사실 범어네거리 남서쪽 220m 남짓한 뒷골목인 '범어먹거리타운'의 이름 자체는 다소 낯설다. 도시철도 2호선 3번 출구 앞과 범어천로 앞에 안내표지판이 있지만 여전히 '그랜드호텔 뒷골목'이나 '범어파출소 골목'으로 더 자주 불린다. 이곳에서 14년째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우(47) 씨는 "상가번영회가 4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범어먹거리타운'이란 이름을 만들고 홍보에 애써왔다"며 "범어먹거리타운이란 이름이 하루빨리 시민들에게 친숙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낮과 밤의 풍경이 다른 곳
범어네거리 주변은 대구에서 금융회사와 병원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이 교차로 곳곳에 자리 잡았고, 전체가 각종 병'의원으로 채워진 빌딩도 여러 곳 된다.
그래서인지 범어먹거리타운의 풍경은 낮과 밤이 조금 다르다. 점심 시간에는 넥타이를 매거나 유니폼을 입은 직장인들로 붐비고, 저녁 시간에는 인근 아파트단지의 가족 손님 또는 각종 모임을 위해 이 동네를 찾은 '아재'들이 많다. 술을 팔지 않는 일부 음식점은 아예 초저녁에 문을 닫기도 한다.
다양한 고객층만큼이나 메뉴도 천차만별이다. 삼겹살, 족발, 막창, 치킨, 순대 등 저렴한 메뉴를 갖춘 40여 곳이 성업 중인 가운데 분식집, 국숫집, 베이커리 카페도 있다. 요리의 국적 역시 다양해서 한'중'일'양식은 물론 태국'인도요리 전문점이 들어섰다. 이 때문에 중국'대만'싱가포르 등지에서 온 관광객도 자주 찾는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어려움 커져
흥미로운 것은 대구에서 손꼽히는 '부자 동네'임에도 으리으리한 요릿집은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주점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노래방이나 바(bar)는 있어도 고급 유흥주점은 없다. 가까이에 학교(동도초등학교)가 있기도 하지만 전통시장인 범어시장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된 '역사'가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칭 '김영란법'은 소박한 이 골목에도 적지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부쩍 손님이 줄었다는 게 상인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이곳 상가연합회 부회장인 이원철(53) 씨는 "아무래도 각종 회식이 줄면서 점포마다 매출이 예전만 못하다"며 "근처에 오피스텔까지 들어선 이후 상가 임차료만 계속 올라 고민스럽다"고 털어놓았다.
◆기장물회 산곰장어
2002년 문을 연 해산물 전문점. 곰장어'갯장어뿐 아니라 손질에 손이 많이 가는 붕장어(아나고) 회도 맛볼 수 있다. 곰장어는 담백한 소금구이보다 양념구이가 술안주로 더 인기다. 10월에는 낙지, 11월에는 굴이 추천 해산물. 바다를 워낙 좋아해서 횟집을 열게 됐다는 이상우(47) 대표는 "일주일에 두 번씩 경남 통영 등 산지를 직접 찾아 좋은 재료를 구해 온 정성이 손님들에게 인정받은 것 같다"고 소개했다.
▷대표 메뉴: 곰장어(3만~5만원), 자연산 활어회(6만~10만원)
▷전화번호: 053)744-2553 ▷영업시간: 오전 10시~다음 날 0시 30분
◆양군 팩토리
4년 전 개업 이후 인근 샐러리맨들로부터 호평을 받아온 돼지고기 전문점. 양도한(34) 대표가 손님 앞에서 직접 고기를 손질하는 데다 종업원들이 테이블마다 배치돼 국산 냉장 꽃삼겹살과 목살을 구워준다. 고기 사진을 SNS에 올리면 치즈 떡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등 이벤트도 다양하다. 매장에 숙성 저장고를 따로 두고 있는 백김치도 별미 중 별미. 양 대표는 "사서 쓰면 편하겠지만 직접 먹는다는 생각으로 강원도 고랭지 배추로 손수 만든다"고 말했다.
▷대표 메뉴: 삼겹살(100g 9천500원), 항정살(110g 1만500원)
▷전화번호: 053)752-5334 ▷영업시간: 오전 11시~자정
◆범어만두
1975년부터 손만두를 팔아온 범어먹거리타운의 터줏대감. 신은선(37) 대표는 "현재 자리에서 장사한 것만 해도 26년째이고, 강순연(60) 주방장이 21년째 만두를 빚어 옛날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곳의 특징은 만두에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군만두는 양배추, 비빔만두는 제주산 무말랭이가 주요 재료다. 특히 군만두를 오이'콩나물'양배추무침과 함께 먹는 비빔만두의 양념장은 독특한 매운맛을 자랑한다.
▷대표 메뉴: 군만두(4천원), 비빔만두(5천원)
▷전화번호: 755-0139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6시 30분
◆부산양곱창
대구 술꾼이라면 한 번쯤은 가봤을 명소. 초저녁에도 테이블 14개가 꽉 찬다. 양은 소의 두 번째 위(胃)에 붙어 있는 좁고 두꺼운 고기로, 예로부터 보양식으로서 명성이 높다. 양구이로 유명한 부산에서 식당을 시작한 엄치문(58) 대표가 15년 전 고향인 대구로 옮겨와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풀을 먹여 소를 키우는 뉴질랜드산 양을 쓰는데, 국산보다 덜 질기고 더 맛있다고 한다. 엄 대표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종업원도 모두 10년 넘게 함께 일해 손님 반응이 좋다"고 강조했다.
▷대표 메뉴: 양 소금'양념구이(400g 4만원), 된장 소면(4천원)
▷전화번호: 053)752-9291 ▷영업시간: 오후 4시~다음 날 0시 30분
◆스위트 인디아
폭넓은 고객층을 자랑하는 8년차 맛집. 10대 학생들부터 80대 어르신까지, 직장인 회식부터 연인'가족 단위 손님까지 다양하다. 네팔'인도 등 외국인 3명, 한국인 1명 등 모두 4명의 셰프가 다국적 퓨전 요리를 선보인다. 상호에서 알 수 있듯 인도풍 커리가 특히 유명하다. 커리는 잘 알려진 대로 맛과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슈퍼푸드. 조리 경력 30년을 자랑하는 김세희(51) 대표는 "커리가 건강식으로 알려지면서 멀리서 오는 손님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대표 메뉴: 치킨 티카마살라(1만2천원), 탄두리치킨(1만8천원)
▷전화번호: 053)741-4624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복진면
2008년 개업했으며, 상호는 '복어+진한 국물+생면'의 뜻이다.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요즘에 더욱 어울리는 맛집이다. '복어지리 라멘'은 시원하고 담백한 복어 육수 맛과 쫄깃쫄깃한 생면의 조화가 일품으로, 숙취 해소에도 그만이다. 다만 밤새도록 육수를 진하게 우려내다보니 아쉽게도 이른 아침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서정훈(46)'최숙희(45) 대표는 "현미밥, 김치, 돼지고기'등뼈 모두 국내산만 고집한다"며 "맛에 대한 욕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대표 메뉴: 복어지리 라멘(7천원), 돈코츠 라멘(7천원)
▷전화번호: 053)745-7766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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