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벨문학상과 대중가수

입력 2016-10-19 04:55:02

미국의 팝가수 밥 딜런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스웨덴 한림원의 의도는 전문영역에 관계없이 누구든 좋은 작품을 쓰면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다는 모범 사례를 남겨 세인들에게 충격을 주려는 속셈인 듯하다. 동시에 노벨문학상이란 반드시 문인들에게만 돌아가는 상이 아니라는 점도 가르쳐 주어 본때를 보이려는 의도인 것도 같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아직도 마음속에 의문이 남는다. 왜 하필이면 유행가를 부르는 가수냐 하는 것이다. 필자는 밥 딜런의 노래를 즐겨 듣진 않는다. 따라서 그의 노래에 담긴 시가 매스컴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감동적인 리릭(Lyric)인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그의 노래 시(Song poem)가 세인에게 던지는 기여도가 크다면 그것은 시로서가 아니라 노래로서일 것이다.

문학상은 문학성이 제1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 달콤하고 고혹적인 노래 가사가 문학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 문단에서도 오랜 숙제이지만 이런 문제는 대중성이 우세해지고 있는 작금에는 그 논의와 쟁의를 내려놓은 상태다. 코미디언의 기념 공원이 생겨나고 유행가 가수들의 노래비가 무분별하게 세워지는 지금, 시인의 시의 수준과 예술성, 문학성은 부차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밥 딜런이 부른 노래 가사가 모두 밥 딜런이 지은 시는 아닐 것이다. 밥 딜런에게는 단 한 권의 시집이 있다지만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가사집이지 시집이라 할 수 없다. 본래 대중가요의 노랫말이 그렇듯이 자신이 아닌 다른 작사가가 지어 준 노랫말을 작곡가가 다시 손질하여 노래 부르기에 알맞게 수정하고 직조한 것이 가사(歌詞)다. 그러니까 대부분 노랫말은 다른 시인이나 작사가들의 언어를 빌린 것이다.

목청이 좋은 것은 가수의 자질이지 시인의 자질은 아니다. 조용필의 노래 가사 연구로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연구자도 있다. 유행가사가 당대 사회의 면모를 조감하고 그에 부응하는 정서나 모습들을 알기 쉬운 말과 감미로운 리듬으로 살려낸다는 점에서 대중가요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용필의 노래 가사 연구에서 조용필이 직접 쓴 가사(시)는 몇 편 안 된다. 대부분 다른 작사가가 쓴 시를 작곡가가 작곡해서 그것을 가수에게 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노벨문학상에는 우리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사정이 숨어 있다. 노벨문학상은 1901년 첫 수상자인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에서 시작하여 올해로 109번째 수상자를 냈다. 햇수로는 116년이지만, 세계대전 등 인류에게 큰 재앙이 있는 해엔 수상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노벨의 이름을 딴 문학상에서 문학인 아닌 사람이 수상자가 된 예도 많이 있다. 1902년 독일의 역사가 데오도르 몸젠은 역사서 '로마사'로, 1908년 독일의 철학자 루돌프 오이켄은 '생의 의미와 가치'로, 1927년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벨그송은 철학서 '웃음, 창조적 신화'로, 1950년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철학서 '권위와 개인'으로, 1954년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이 상을 받았었다.

노벨상과 노벨문학상은 그간 정치력과 국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언어, 특히 영어권이나 불어권이 거의 수상자를 휩쓴다는 것은 거짓 없는 사실이다. 노벨문학상은 이제 노벨 대중상, 노벨 인기상이라고 이름을 고쳐야 할 상황에 이른 느낌이다. 문학을 종교처럼 신봉하고 생애를 거기에 투여하는 문인의 고투를 어떤 이유에서든 외면해서는 안 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