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나를 무척 사랑했는데
가족은 모두 사망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여동생, 방용순이다. 대구 큰사랑병원에서 요양 중인 그녀를 찾았다. 돌아가신 나의 큰누님과 절친한 친구이다. 약 60년 만에 만났지만 단번에 알아보시고 손을 꼭 잡는다.
"누님 고생 많습니다. 누님 집은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양지만리'지요. 오빠는 어떻게 화를 당했는지요?"
"오빠는 그때 큰 마실에 있었어. 사람 좋기로 소문난 오빠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남의 집에서 일했지. 일꾼들과 사랑방에서 놀다 변을 당했어. 총각인 오빠는 덩치가 크고 인물도 좋았지. 이목구비가 뚜렷했어. 마을 처녀들이 침을 흘렸지. 간이학교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한약방 하시는 박일동 어른에게 한문을 배웠어. 그 어른은 너희 할배잖아?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려 했지. 큰 마실이 갑자기 대낮같이 밝아오데. 멀리서 바라보니 마을 전체가 불타고 있었지."
"오빠 상길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아버지는 안절부절못했어. 불타는 마을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고.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잤어.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오빠 친구 방청길이 헐레벌떡 뛰어와 오빠가 죽었다고 연락하더군. 아버지와 큰오빠는 교회에 누워 있는 셋째 오빠의 시신을 수습해 왔어. 온 집안이 울음바다가 됐어. 남자 형제 네 명 가운데 외동딸인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돌아가신 오빠의 상태가 어떠했는지요?"
"얼굴은 봤지만, 상처 부위는 보지 못했어. 칼자국이 왼쪽 가슴에서 아랫배 쪽으로 길게 그어졌다 하더군. 심장을 찔렀던 모양이야."
"둘째 오빠는 사건 당시 집에 없었다고 하던데요?"
"용복이 오빠는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자원입대했지. 둘째 오빠는 6'25전쟁 중에 중공군에 잡혀 포로 교환 때 풀려났어. 휴가 나온 오빠는 동생의 무덤에서 멍머구리처럼 울더군. 그때부터 군에 있는 오빠에게 자주 편지를 썼어."
"누님, 한글을 어떻게 깨쳤는지요?"
"그때는 소학교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어. 가시나가 글을 배워 뭐하노? 카면서. 정미소를 운영하는 정원덕이란 사람이 글을 가르쳤어. 뒤를 이어 박춘길 오빠가 우리를 지도했어."
"무엇을 배웠나요?"
"기역, 니은부터 가갸거겨, 아야어여~, 구구단도 배우고. 초등'중등반으로 나눠서. 너희 누나도 나와 함께 배웠지. 그때 어문을 겨우 깨우친 거야."
"사건 통에 꽃다운 총각이 여럿 죽었어요. 일부는 좋은 곳에 가라고 굿을 해 줬다 하던데요?"
"그때 죽은 사람 중에 총각이 세 사람이었어. 어떤 집은 몽달귀신 장가보낸다며 굿판을 크게 벌였지만, 우리는 조용히 굿을 했어.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구경하는 사람들도 눈물을 많이 흘리더라고. 이듬해 큰 마실로 이사 왔어. 집 가까이 짐승들의 공동묘지가 있었잖아. 을씨년스러웠어. 밤이 되면 으스스하고."
그녀가 살았던 집은 마을에서 떨어진 도래솔 언저리다. 그곳에는 짐승들의 무덤이 있었다. 소위 '소 무덤'이다. 그 시절, 소에게 돌림병인 황병이 횡횡했다. 전염병에 걸리면 치사율이 높았다. 소가 죽으면 지서에 신고하고 묻었다. 파먹지 못하도록 소의 몸뚱이에 경유를 뿌려놓지만, 이슥한 밤이면 소의 형체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만큼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12. 사망자 방상길 27세. 여동생 방용순 14세. 영천 청통
재혼한 엄마를 만났지만
난 지 두 살 때였으니 기억에 전혀 없어요. 겨우 젖을 떼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어떻게 장례를 치렀는지 삼촌에게 들은 이야기가 전부예요. 아버지는 그날, 위채에서 주무시고, 사랑방에는 삼촌 또래가 놀았대요. 놈들이 주무시는 아버지를 끌고 나와 그 자리에서 바로 죽였다더군요. 놈들에게 대항하며 도망치려고 했던가 봐요. 딴 사람들은 마을 뒤 논 마당에서 처형당했지만. 아버지를 여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재혼했어요. 여덟 살 때 엄마란 사람이 찾아왔지요. 철든 뒤, 처음으로 엄마를 본 셈이지요.
"어머니를 만나보니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그저 덤덤했어요. 애틋함도 없었고…. 열여섯 살까지 고모 집에서 살았어요. 거기서 초등학교를 졸업했지요. 그 뒤, 삼촌(방수만)이 결혼하여 분가할 때 따라나왔어요. 스물셋, 결혼할 때까지 삼촌과 함께 살았어요. 고모'삼촌'숙모가 부모 노릇을 한 셈이지요. 그 은혜는 평생 못 잊을 겁니다. 건실한 신랑을 만나 열심히 살아요. 부자는 아니지만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답니다. 이 모습을 지하에 계신 아버지가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버지 얼굴은 모르지만, 해마다 모시는 추모제에는 꼭 참석하려고 해요."
사망자의 동생 방수만의 말이다.
"형님과 함께 위채에서 자고 있었어. 놈들이 들이닥쳐 형님을 끌고나가더니 옥신각신하더라고. 형님은 사랑채에 놀던 배재기와 함께 묶였어. 재기 형님이 놈들에게 반항했지. 손목을 잘린 채 도망가는 것을 보고 형님도 도망치려 했어. 그 형은 목숨을 구했지만, 형님은 그 자리에서 죽었어. 형님의 왼쪽 가슴에 칼자국이 깊게 패 있었지. 심장을 겨냥했던 모양이야. 어린 조카는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재혼하여 하루아침에 고아가 됐지. 착하게 잘 자랐어. 부모 없는 티도 안 내고."
#13. 사망자 방천백 32세. 딸 방순태 2세. 대구시 방촌동
동생 방수만 10세. 경산시 하양읍
아버지는 사건에 죽고, 형은 늑대에 물려 죽고
"방성만 폰입니까? 저는 박사리에 사는 박기옥입니다."
"아, 박기옥 씨, 반갑습니다."
"어떻게 저를?"
"왜 몰라요. 초등학교 3학년 1학기까지 박사리에 살았는데요. 내가 교육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호적등본을 떼러 와촌면사무소에 갔을 때, 친구가 거기 근무했잖아요? 서울에서 내려온 나를 반갑게 맞으며 점심까지 사 줬잖아요." 골목은 건너뛰었지만, 친구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해 미안함이 앞섰다.
"그래, 불알친구네. 서로 말 놓자. 너거 어른께서 당한 내용을 아는 대로 이바구해 봐라."
"태어난 지 겨우 3개월밖에 안 됐으니 우째 알겠노? 엄마와 누나에게 들은 것이 전부야. 아버지도 여느 어른처럼 칼에 찔려 돌아가셨다는 것만 알아. 가끔 엄마에게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입을 꽉 다물었어. 그날의 아픔을 떠올리기 싫었을 것 같아."
"서울, 객지생활 고생 많이 했겠네?"
"말도 마라. 고향에 있을 때, 논 세 마지기가 전부였어. 엄마가 결단을 내렸지. 시골에 있으면 자식 공부 못 시킨다며. 엄마의 고생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 참기름 들기름을 머리에 이고, 이 골목 저 골목 목이 쉬도록 소리치며 행상했어. 피땀 젖은 돈으로 고등학교를 겨우 마쳤어. 대학은 돈 벌어가며 다녔고. 막노동을 비롯하여 안 해본 일이 없었지. 초등학교 선생질하다 풍금을 타지 못해 집어치우고, 교육공무원으로 취직하여 정년퇴직했지."
"가족 가운데 '수미짱'이란 누나가 있었제?"
"그래, 누나는 일본에서 태어났어. 일본 이름이잖아. 위로 두 명의 형이 있었지. 바로 위 형이 늑대에 물려 죽었어. 그 사건을 너는 모르나?"
"……"
늑대 이야기로 흘렀다. 친구가 들려준 늑대 이야기다.
"그때는 늑대가 득실거렸잖아. 형이 늑대에게 물려 간 날은 부욱에 있는 사촌 형님 집 제삿날이야. 우리 가족 모두 그곳에 갔어. 어른들은 제사 준비를 하고 있었지. 누런 개가 아기를 물고 도망간다고 누군가가 외쳤어. 어른들이 뛰쳐나와 늑대를 쫓아갔을 때는 놈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어. 마을 청년들이 꽹과리와 징을 치며 살미골'작은골'큰골'소등대(산골짜기 이름) 가까운 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형을 찾을 수 없었어. 산산 조각난 옷가지만 발견했을 뿐이야."
나의 유년 시절에는 늑대와 여우가 많았다. 우리 골목에는 다섯 집이 살았다. 골목 채소밭 한구석에 다섯 가구가 이용한 우물이 있었다. 새벽이면 우물가에서 늑대 우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우우~' 마치 아기 울음처럼. "내년 추모제 행사에는 꼭 참석하여 고향을 돌아보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에 향수가 묻어 있었다.
#14. 사망자 방태술 36세. 아들 방성만 2세. 서울 양천구 신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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