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미국의 대통령들

입력 2016-10-17 04:55:01

평양고등보통학교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지상 최대의 쇼'로 거듭난 美 대선

45대 선거처럼 재미없는 '쇼'는 없어

18년 탈세·성추행…결격 사항투성이

트럼프 당선 확률, 복권 당첨보다 낮아

어느 나라에서나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독재정권은 일단 당선된 대통령을 장기 집권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다음 선거에 임하기 때문에 선거 때마다 당선이 확실시된다.

민주국가에서도 장기집권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4년제 임기 대통령에 네 번이나 당선됐지만 네 번째 임기는 시작하자마자 병으로 사망하여 대통령의 자리는 해리 트루먼 부통령에게 넘어갔다. 루스벨트가 죽지만 않았으면 무려 16년 동안 백악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14년이라는 긴 세월 경무대의 주인 노릇을 했다.

미국 대통령에게는 두 번만 하고 물러나야 한다는 헌법상의 규제가 없었으므로 몇 번이라도 출마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조지 워싱턴이 두 번만 하고 물러나 선례를 남겼기 때문에 감히 3선에 도전하는 대통령은 없었는데, 루스벨트는 감히 4선에 도전하여 승리하였으므로 국민 사이에 "2번 이상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 헌법을 개정해 누구도 3선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이 '세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마무리 짓고 '메시아' 같은 환영을 받으며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고자 베르사유 궁전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나타난 그날부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내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양당 제도를 고수하는 미국의 대선이 '지상 최대의 쇼'가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 장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1952년부터였다. 그 선거는 TV를 통해 실황이 전 세계 방송되었고 그때 승리의 글귀가 "I like Ike"였으며, 그 한마디가 많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아이젠하워를 좋아하게 만들었고 당선되게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처럼 재미없는 '쇼'는 없다. 부동산으로 갑부가 되어 개인 전용 비행기까지 가진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설마 저자가 공화당의 공천을 받기야 하겠는가"라고 한심한 눈초리로 그 경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뜻밖에도 트럼프가 '세몰이'에 점차 성공하는 것을 보고 놀란 사람들도 많다.

민주당에서는 공화당의 다른 어느 후보보다도 트럼프가 공천에 떨어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선동가라는 낙인이 찍힌 그 사람이 경선에 이기면, 탈세 등의 범법행위가 차차 드러나고 그의 복잡한 여자관계도 자연히 세상에 알려질 것이 명백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탈세와 성추행은 미국의 모든 유권자가 다 싫어하는 공직 지망자의 결격 사항이기도 하다.

그는 네 번이나 파산선고를 법원에 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입은 손해가 2억달러가 넘는다고 신고하였다. 그리고 18년 동안 연방정부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버티어 오늘의 억만장자가 되었으니 그런 사람을 좋아할 유권자는 없고 광신자가 아니고는 따라다니는 자가 없을 것이다. 여성에 관한 음담패설이 더러는 비디오에 담겨 방송에서도 자주 보여 준다. '라커룸 토크'에 지나지 않는다고 트럼프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지만 유권자들은 하원의장 폴 라이언과 함께 "더 이상 변호할 수 없는 후보"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뉴욕타임스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를 네 가지나 들었다. 그 첫째가 탈세를 해서라도 돈을 벌겠다는 사람이기 때문에 안 되고, 둘째는 막말을 서슴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미국 하원에 스무 번이나 당선되어 40여 년 의원생활을 하는 민주당의 찰스 랭글 의원이 일전에 자기 친구 박동선에게 전화하고 "만에 하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나는 한국에 가서 살겠다"고 농담을 하더란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은 '만에 하나'가 아니라 복권에 당첨되기보다도 더 확률이 낮다고 느껴진다. 사람이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가다가 벼락 맞아 죽을 확률과 맞먹을 만큼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다'기보다는 불가능한 것 같다. 아직도 투표일까지는 22일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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