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난주 29%로 떨어졌다. 취임 이후 최저로, 유난히 고정 지지층이 많았던 걸 감안하면 충격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일 테지만, 딱 한 가지를 꼽자면 '어디 한 분야도 잘한 게 없다 보니 지지자들마저 지쳤다'이리라. 하지만 난 이걸 '시대와의 불화'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욕을 먹지만, 시대가 달랐다면 박 대통령 스타일이 훨씬 더 높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 테니까. 이게 괜한 소리가 아님을 손자병법을 동원해서 증명해 본다.
사례 1. "성동격서는 동쪽을 공격한다고 소리 질러 놓고 실제로는 서쪽을 공격한다는 뜻으로, 상대를 혼란시켜서 허를 찌르는 병법이다."
경주에 강도 높은 지진이 난 다음 날,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지진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한 채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핵을 탑재한 미사일 한 발만 쏘면 북한 정권을 끝장내겠단다. 일부에서는 이 발언이 좀 뜬금없는 거라고 얘기한다. 과연 그럴까. 지진이 아무리 무서워도 북한보다야 덜하다. 북한 핵미사일이 터지는 상황을 가정하면 지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대통령의 이번 전략은 적이 나타났을 때 그보다 더 큰 적의 존재를 언급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자는 취지였다. 만약 대통령이 이번 지진에 대해 "국민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잘 대처하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은 이게 하나 마나 한 소리라고 생각했을 테고, 괜히 불안만 더 가중시켰으리라.
사례 2. "전쟁을 할 때 적보다 10배의 병력이면 포위하고, 5배의 병력이면 공격하고…적보다 적은 병력이면 도망치고, 승산이 없으면 피한다."
올 4월 총선에서 패배한 뒤 청와대는 한동안 아무런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그건 새누리당 너희의 일이니까 나는 관계없다는 식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는 유승민을 탈당시키는 등 민심을 떠나게 만든 박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와대의 침묵은 사실 병법을 따르는 길이었다. 총선 결과 의석수가 더불어민주당에게 밀려 2당으로 전락한 상황이니 싸움을 회피하면서 탈당 후 당선된 이들의 복당을 기다리는 게, 즉 수적으로 우세할 날을 기다리는 게 나았으니까.
사례 3. "전쟁에서 장수가 충직하냐 그렇지 못하냐에 따라 군대의 강함과 약함이 결정된다."
2014년 12월, 정윤회 게이트가 화제가 됐다. 정 씨가 사적으로 비서진을 부리면서 국정을 농단한다는 얘기였다. 그 배후에 박 대통령 남동생과의 갈등이 있다는 설도 제기됐다. 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진다면 사실 여부를 떠나 모두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 때문에 박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은 개의치 않은 채, 측근들을 챙겼다. "내가 알아봤는데 사실무근이더라"라는 말로 추가적인 감사 가능성을 없애 버렸고, 오히려 그 사실을 외부로 유출한 사람을 문제 삼았다. 요즘 한창 문제 되는 미르재단과 최순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에서도 대통령은 최 씨 개입설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야당은 최순실 등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세우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대통령의 뜻을 받든 새누리당은 결사적으로 그 사태를 막아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필경 "저런 대통령이라면, 나도 측근이 되고 싶다"며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이는 장수들의 충성을 이끌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박 대통령이 흔히 쓰는 전략들은 다 손자병법에 근거가 있는 것들이다. 투명함을 강조하는 요즘 세상에선 이런 것들이 '꼼수'라 폄하되니, 대통령이야말로 시대를 잘못 만난 게 아니겠는가? 대통령께서 300년쯤 전에 태어나셨다면 좋았을 뻔했다. 자신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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