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를 읊음[題菊花]
황소
쌀쌀한 가을바람 속, 뜰 가득히 피었건만
꽃과 향기 다 싸늘해 나비도 아니 오네
언젠가 내가 만약 봄의 신(神)이 되는 날엔
이 국화를 복숭아꽃과 함께 피어나게 하리
颯颯西風滿院裁(삽삽서풍만원재)
蕊寒香冷蝶難來(예한향냉접난래)
他年我若爲靑帝(타년아약위청제)
報與桃花一處開(보여도화일처개)
당나라가 내리막길로 마구 내달리고 있을 때다. 소금 밀매 장수 왕선지(王仙芝)가 민중봉기를 일으키자, 소금 밀매 장수 황소(黃巢'?~884)가 맞장구를 쳤다. 혹독한 가렴주구에다 대흉년이 겹쳐 삶이 막막했던 백성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얼마 후 왕선지가 전사하자 전권을 장악한 황소는 광활한 중국 천지를 좌충우돌하며 가는 곳마다 쑥대밭을 만들었다. 881년 황소는 마침내 백성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황금 마차를 타고 장안에 입성하여 황제의 자리에 훌쩍 올랐다.
하지만 당나라 조정에서 군사들을 총동원하여 장안을 포위하자,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휘하 장수 주온(朱溫)이 돌연 당나라에 투항하자, 대세가 휘청 기울어져 버렸다. 황소는 적들과 처절하게 맞싸웠으나, 태산 전투에서 참패를 하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당나라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풍운아 황소! 최치원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게 한 덕분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는 처음부터 무지막지한 소금 장수였을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다. 낙방하긴 했지만, 그는 과거에도 여러 번 응시했던 선비였다. 다섯 살 때 이미 시를 지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그가 지은 두 수의 국화(菊花) 시는 아주 유명한데, 그 가운데 하나가 위의 시다.
다 알다시피 한시 문화권에서 국화는 절개와 은일(隱逸)의 상징으로 완전 고착화되어 있다. 그런데 이 시에 등장하는 국화는 악조건 속에서 버림받고 있는 고독과 소외의 상징이다. 그러한 점에서 국화는 학정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모습을 닮았다. 국화에 대한 인식의 갱신이 아닐 수 없다. 더욱더 주목되는 것은 '봄을 주재하는 신이 되는 날엔, 국화와 복사꽃을 함께 꽃피우게 하겠다'는 대목이다. 황제가 되어 그동안 찬밥 신세였던 국화와 그 잘난 복사꽃이 더불어 사는 평등 세계를 만들겠다는 혁명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어 다른 꽃이 죄다 시들고 나면, 국화꽃 향기로 장안성을 온통 뒤덮게 하겠다'고 노래한 그의 또 다른 국화 시는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미로도 읽혀 더욱더 혁명적이다.
하지만 황소의 봉기가 혁명인지는 매우 의문이다. 설사 처음에는 혁명성이 섞여 있었다고 하더라도,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완전 딴판으로 돌변하여 민중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으니까. 정말 안타깝게도 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당나라 황제와 똑같은 황제가 되어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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