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사자성어로 들여다본 오늘

입력 2016-10-07 04:55:04

지인이 느닷없이 막걸리 집을 하나 차리겠다고 나섰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틈새시장을 열어 줬단다.

농(弄)을 섞은 창업 얘기는 이렇다. 막걸리 이름은 청탁이다. 맛은 일부러 떨떠름하게 한다. 청탁을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모두 마음이 찜찜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 김영란법 대상자에게 늦은 오후 전화를 건다. "저녁에 청탁할래요?" 단돈 3천원짜리 청탁 막걸리는 법에 걸리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도 알려준다. 합법적인 청탁은 막걸리 청탁으로만 해야 한단다. 그러면 청탁이 만연한 대한민국에서 금세 돈방석을 꿰찬다는 것이다.

사드 논란도 청탁으로 해결한다. 사드도 넓게 보면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청탁이라는 논리다. 여론을 똘똘 뭉쳐 목소리를 서울행 기차에 태우기만 하면 청탁은 통한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부지가 바뀐다. 이번에는 김천 시민들이 봉기했고 원불교도 성지를 더럽힐 수 없다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딴 동네로 쫓아내든 막아내든 청탁이 먹힐지는 의문이다.

단식을 접고 국회로 돌아간 새누리당 대표는 쌀 한 톨 대패질하듯 민생을 챙기겠다고 했다. 새누리당을 잘 봐 달라는 대(對)국민 청탁인 셈이다. 그가 뱉은 격언은 왠지 막걸리 청탁(?) 맛처럼 떫다.

요즘 세태엔 어떤 격언과 사자성어가 어울릴까? 단식이 일일여삼추(하루가 삼 년 같다)라지만 일주일 만에 단식을 끝내는 정치인이나 이를 두고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는 금배지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3년 전 박근혜정부를 출범시킬 때만 해도 '밭 팔아 논 살 때 이밥(쌀밥) 먹자고 하였지'란 기대를 가졌으나 함흥차사다. 검찰의 국사무쌍(천하제일의 뛰어난 인물)한 인사들은 부패의 고리에 엮이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하이힐을 신은 한 젊은 여성은 노인을 상대로 하이킥을 날려 철창 신세다. 우리 사회를 지탱했던 노마식도(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수명을 다했다.

김영란법은 어떤가. 당초 모습을 잃고 이리저리 엇대고 저리 덧대 수백만 명이 법 적용 대상자가 되는 누더기 법으로 둔갑했다. 대한민국 부패를 척결하는 우공이산(우공이 산을 옮기다)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복수불반분(한번 엎은 물은 다시 대야에 담지 못한다)은 필히 경계해야 한다.

성매매특별법은 학생, 주부, 미성년자 등에게 성매매를 하나의 직업군으로 인식하게 했다. 성이 주택가 등으로 숨어들면서 성매매가 대중에게 바짝 다가섰다. 10여 년 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개선장군처럼 집창촌을 누볐던 아무개 총경이 지금에 와서 후회막급이라 외쳐도 한번 열린 판도라의 상자는 닫을 수 없다.

시위 현장에 나선 한 농민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서도 여야가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 부검을 둘러싸고 유족과 시민단체, 경찰(정부) 등이 다투고 있다. 사인 규명에는 과학적 부검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하지만 부검을 반대하는 쪽에서 순순히 결과를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콩으로 쑤든 팥으로 빚든 '메주'는 또 다른 논쟁의 불씨다.

세월호, 메르스, 경주 지진 등에서 보여준 무능한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정부는 영남권 신공항을 두고도 외수외미(이것도 저것도 겁나다)했다. 부산표가 두려워, 집토끼(대구경북) 민심 이반이 겁나 족보에도 없던 김해공항을 양자 삼았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 예쁘다지만 믿을 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다.

황색 굿판을 벌이는 언론은 제 눈의 대들보를 보지 못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더니 한 유명 언론인이 초호화 요트에다 갖은 부패 스캔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중취독성(모두 취해 있으나 홀로 깨어 있다)의 펜촉들은 곡할 노릇이다.

남들이 200년에 이룰 역사를 반세기 만에 해냈으니 그 과정에서의 불협화음은 필연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 정치, 언론 등 사회 각 분야가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란 마음으로 신뢰프로세스를 엮어 나간다면 고침무우(베개를 높이하고 근심이 없다) 대한민국이 지척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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